
외국에 오래 산다는 이유로 한국에 방문할 때마다 주변 지인들을 번거롭게 하는 편이다. 서울에 사는 지인들은 내 시간에 맞춰 바쁜 일상의 한 토막을 툭 떼어 내어주고, 서울이 아닌 다른 지역에 있는 지인들은 하루이틀 시간을 내어 나를 만나기 위해 서울로 오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만나면 반갑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수다를 떨지만, 그 못지않게 한편에는 나를 위해 내어준 그 시간과 에너지에 빚을 진 것 같기도 하다.

전주행은 충동적이었지만, 모든 상황이 맞춰줬기에 가능했다. 전주에 사는 대학 후배는 매년 나를 만나러 서울에 왔다가 내려가는 길에, 다음에는 전주에도 놀러 오라는 인사를 남겼다. 특히 큰 아이가 대학에 입학한 후에는 우리 아이에게 전주를 구경시켜 주고 싶다고 같이 오라고 했다. 어쩌면 상해보다 더 뜨거웠을 폭염의 한가운데 어느 날, 시댁에서 땀을 줄줄 흘리며 설거지를 하다가 올해는 내가 전주를 가보리라 결심했다. 둘째 아이는 학교 관련 일정으로 홍콩에 가 있었고, 큰 아이는 막 계절학기 수업을 마치고 여유가 있었다.
나에게도 전주는 처음 가보는 곳이나 다름없었다. 30여 년 전, 가족여행으로 갔었으나 기억에 남는 것은 유기그릇 안에 예쁘게 담겨나온 비빔밥이 다였다. 그사이 전주하면 한옥마을을 떠올리게 되었고, 우리도 당일치기 전주 여행의 목적지를 한옥마을로 잡았다. 예상대로 날은 여전히 더웠다. 한옥마을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며 여유롭게 거닐기에는 햇볕은 뜨거웠고, 땀은 쉼 없이 흘렀다. 어떻게든 이 무더위를 피해 보려고 후배는 양산 두 개, 부채 두 개를 준비해 왔다. 양산 한 개를 같이 쓰며 후배는 내 손을 꼭 잡았다. 후배는 방에 들어가서 도통 나오지 않고 목소리를 듣기조차 어려운 중학생 사춘기 아들 두 명을 키우고 있다. 아들들이 휴대폰과 한 몸이라며 웃으면서 말해도 그 속은 어지간히 탔을게다. 전주에 내려와서 정착한 지 3년째, 여전히 전주와 아들들에게 적응 중이라고 한다. 편하게 대화하고 깔깔거리며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며, 그 땡볕의 길 한가운데에서 후배는 기분이 좋은지 시답잖은 농담에도 까르르까르르 웃었다.

나에게도 이 시간은 해방이고 힐링이었다. 올여름 시어머니께서 부쩍 건강이 쇠약해지셔서 거동까지 불편해지시자 내가 한국에 머무는 동안 시댁에서 해야 할 집안일도 많아졌다. 시댁에 가 있으면 앉아 있을 시간이 없을 정도로 집안일이 끊이질 않고, 적적하신 시부모님의 말동무까지 해 드려야 하니 끝없는 돌봄 노동의 고단함을 체감하는 중이었다. 내년에 귀국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도 큰 고민이었다. 유난히 더위에 약한 큰 아이는 힘들 법도 한데 내색도 못하는 듯 했다. 엄마와 이모의 근황토크를 듣고있자니, 땡볕 더위의 투정쯤은 그저 알아서 참고 넘겼던 것인지. 이 불볕의 더위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곧 사라지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 오겠지만, 우리의 이 뜨겁고 고단한 현실은 언제 끝날지 기약할 수 없다. 막막함은 땀이 되어 뚝뚝 흘러내렸다.
육아와 돌봄과 한낮의 땡볕에 지친 우리들은 한옥마을 중간중간에 있는 도서관을 방문했다. 전주에는 특별한 도서관이 여러 곳 있다고 했다. 그중 한옥마을 도서관은 한옥 전체를 도서관으로 만든 아주 이색적이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무엇보다 도서관에 들어서면 바깥의 더위는 비현실적이도록 시원했다. 게다가 한옥의 소나무 향과 책의 향이 어우러진 향이 은은하게 풍기고 있어서 차분하고도 기분 좋게 만들었다.
후배는 한번씩 이 곳에 와서 몇 시간씩 앉아 책을 읽다가 간다고 한다. 그저 잠시 앉아만 있어도 내게도 힐링이 되는 장소였다. 내가 만약 혼자 살 곳을 선택한다면 전주가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우리의 계절은 내년에도 뜨겁게 작열하여 쉬이 지치고 힘든 시간이지 싶다. 그럴때 후배는 도서관에 들러 잠시라도 쉬겠지. 그런 그녀가 그릴울 때 다시 한번 전주행 버스를 타야겠다.
올리브나무(littlepool@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