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연수 작가의 책은 처음 읽었다. 작가는 어느 지역사회 행사에서 자신의 소설을 낭독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낮에 농사일을 하고 저녁 행사에 참석한 몇몇 사람들이 피곤을 못 이겨 잠깐씩 졸기도 하는 모습을 보았고, 이때 작가는 오히려 독자들과 더 많이 이야기하고 소통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 책은 낭독을 위해 쓴 짧은 소설 스무 편을 모은 것이다. 그 중 특히 기억에 남은 두 편이 있다.
<첫여름> 화자(话者)의 엄마는 젊은 시절 옥희라는 소녀와 우연히 만난다. 세월이 흘러 화자의 엄마는 세상을 떠났고, 지금은 서점 주인이 된 옥희가 화자를 찾으면서 둘은 만나게 된다. 이 만남을 통해 화자는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의 젊은 엄마를 알게 된다.
화자의 엄마는 영화배우였고, 화자를 잉태했으나 어떤 사정이 있었던지 이 상황을 혼자서 감당해야만 했다. 한편, 당시의 옥희는 어려운 형편 때문에 진학을 포기했었다. 화자의 엄마는 옥희에게 말했다.
“…뱃속에 있는 이 아이도 이 세상에 태어나 자라면 하고 싶은 일이 생기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 나는 기분이 좋아져…”
옥희가 말했다.
“…다시 학교 다니고, 친구를 사귀고, 그런 생각을 하면 기분이 좋아져요.”
화자의 엄마는 용기를 냈고, 오로지 미래만을 생각하기로 화자의 엄마와 약속한 옥희는 노력 끝에 대학에 진학했다. 화자의 엄마는 영화배우가 아닌 양장점을 하면서 혼자 딸을 키웠고, 옥희는 졸업 후 선생님이 되었다. 퇴직 후에는 원하는 대로 서점 주인이 되었다.
<젖지 않고 물에 들어가는 법>에서 주인공은 말한다.
“비유하자면 소설가는 마르고 젖은 존재인 셈이죠. 소설가는 몰라도 되는 세계를 인식함으로써 그 세계를 가능하게 합니다. 그러니 글쓰기는 인식이며, 인식은 창조의 본질인 셈입니다. 그리고 창조는 오직 이유 없는 다정함에서만 나옵니다… 타인에게 이유 없이 다정할 때 존재하지 않았던 것들이 새로 만들어지면서 지금까지의 삶의 플롯이 바뀝니다.”
이것은 바로 작가의 생각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다.
주인공은 비행 중 공황장애 발작을 일으킨 후 토하고 만다. 이때 그를 안심시키고 토사물을 정리해 준 승무원의 친절에 깊은 안도감과 평화를 찾는다. 그리고 크게 깨닫는다. 이를 소재로 글을 쓰게 되고 그는 유명 소설가로서의 길을 가게 된다.
“저는 젖지 않았어요.”
토사물에 젖지 않았다는 승무원의 말이다. 이에 대해 작가는 작품 속 한 인물의 입을 통해 설명한다. “그러니까 그때그때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생각들을 믿지 않고 이야기의 뼈대를 보게 되면 젖지 않고도 이야기 속에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군요.”
승무원은 토사물이 아니라 주인공의 공포와 고통을 보았던 것이다.
사실 두 작품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하다. 타인에 대한 이유 없는 다정함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지에 대한 이야기 말이다. 부끄럽게도, 타인에게 이유 없이 다정한 것이 무엇인지 그래도 잘 모르겠다면, 먼저 내가 받은 타인의 이유 없는 다정함을 깨닫고 기억해 볼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 없는 다정함은 자신에 대한 그리고 타인에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해도 될까.
읽기 어려운 부분도, 특별히 심오한 대목도 많지 않았다. 평범한 우리 삶의 모습을 그렸지만, 잔잔한 감동이 밀려왔고 어느새 마음 한구석에 들어와 앉은 깨달음은 평범하지 않다.
오세방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하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