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지에 쓰인 그대로 이 책은 출장 산문집이다. EBS 대표 프로그램인 <다큐프라임>, <지식채널e> 등의 연출가인 김현우 피디가 해외 출장 중에 겪었던 다양한 에피소드와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에 자기만의 시선을 담아 엮어낸 산문집이다. 읽고 난 뒤 너무 좋아서 책 제일 뒷면에 “책을 고르는 자신의 안목에 탄복한 책” 이라는 메모까지 남겼었다. 30여 편의 글들이 얼추 비슷한 몇 개의 키워드로 분류되어 있다. 그 키워드들이 어쩌면 김현우 피디의 관심사일 것이니 그 키워드를 중심으로, 책 속의 문장들을 옮겨보는 것으로 책 소개를 대신한다. 그 이상으로 이 책을 더 잘 소개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관용_ 암스테르담은 원래 사람이 살기 어려운 땅이었다. 어쩔 수 없이 떠나온 이들이 제방을 쌓고 정착하며, 한 사람의 손도 아쉬웠기에 서로의 차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의 ‘관용’은 다양성에 대한 고상한 비전이라기보다,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택한 ‘다름을 견디는 자세’에서 비롯된 것이다.
폐허_ 나가사키의 단정한 모습은 반가웠다. 그러나 사람들은 특별한 열정으로 도시를 재건했다기보다, 그저 폐허 위에서 가능한 일을 하나씩 해왔을 뿐이다. 삶도 마찬가지다. 폐허 같은 순간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지금 곁의 사람들과 정성을 다해 이어가는 일뿐이다.
경계_ 경계는 멀리 떨어진 이들이 그어놓지만, 경계에 사는 이들에겐 삶의 조건일 뿐이다. 삶은 그런 선처럼 매끈하지 않다. 새벽, 단동의 풍경이 어둠에 잠겨 있을 때는 경계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패자_ 알파 수컷이 아닌 잠바는 늘 먼 곳을 바라봤다. 눈을 맞출 상대가 없으니 함께할 수도 없었다. 루저가 바라볼 수 있는 건 상처이거나 다른 곳뿐이다. 그러나 잘사는 사회는 패자도 책임감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사회, 단순한 약육강식이 아닌 사회여야 한다.
세계 방방곡곡의 다양한 삶의 현장을 누비다 보면 빛과 어둠을 균일하게 만나겠지만 김현우 피디의 시선은 이처럼 대부분 “관용, 경계, 폐허, 패자와 같이 낮고 소외된 사람들을 향하고 어떤 부풀림이나 측은지심도 없이 최대한 담담하게 그 현장을 전한다. 어쩌면 그가 지향하는 다큐멘터리의 정신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어쩌면 이런 시선 때문에 김현우 피디를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거기다 간결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정확한 문장은 덤이다. 근 20년의 다큐멘터리 피디와 번역가라는 이중 직업을 통해 끊임없이 내공을 다진 결과가 아닌가 싶다.
이 책에 이어 김현우 피디는 <타인을 듣는 시간>이라는, 제목만으로도 끌리기에 충분한 독서 에세이를 펴내기도 했다. 항상 낮은 자세로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을 지향하는 시선… … 이런 시선으로 바라본 책 속의 주인공들과 만나다 보면 알게 모르게 그들의 삶의 자세를 배우게 되는 것 같다. 적어도 흉내라도 내게 된다. 그리고 책 속에 언급된 인물들에 슬며시 자신의 삶을 대입하다 보면 가끔은 찌질하거나 무덤덤하거나 비겁하거나 소외감을 느끼던 자신의 혼탁한 삶도 조금씩 정화가 되고 위로가 된다. “그래, 나도 도망가지 않고 주어진 삶의 현장을 성실하게 살아내고 있는 거야”하며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다.
책 두 권으로 나는 이미 김현우 피디의 덕후가 되었고, 앞으로도 꾸준히 그가 펴내는 책들에 덕질을 하게 될 것 같다.
류란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하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