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엔 그저 언어와 문화 차이일 줄 알았다. 하지만 아이가 다니는 국제학교 수업을 들여다볼수록, 내가 학교에 다닐 때 기대받았던 건 ‘교육’이 아니라, ‘살아남는 방식’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의 교육은 정해진 지
식을 암기하고, 틀리지 않고 빠르게 수행해서,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이었다. 그래야 더 나은 대학, 더 좋은 회사, 더 안정적인 삶으로 이어지니까. 아이의 위치가 평균 이상이길 바라는 마음, 중간은 해야 한다는 불안, 그 모든 것이 ‘잘 키우는 법’이라는 이름으로 주어졌다.
그런 나에게 IB 교육과정은 신비롭고도 낯설었다. 이집트에 갈 일 없을 것 같은 아이가 이집트 문자를 읽는다. 결과지를 받아도, 잘하고 있는 걸까? 어느 정도 수준인 걸까? 도무지 감이 오지 않는다.
‘배려’의 기준도 달랐다. 한국에서의 배려는 돌봄과 보호에 가까웠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채고, 먼저 챙겨주는 것. 그래서 배려받고 싶다면 타인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비슷하게 존재하는 것이 유리했다. 그렇게 점점 ‘너에게 맞출게. 나를 말하지 않을게’라는 삶의 방식에 익숙해진다. 평범하고 예의 바르고, 튀지 않으며, 모두와 잘 지내는 사람. 그 안에서 자기 마음은 점점 조용해진다.
하지만 국제학교의 철학은 달랐다. 배려는 감정적 개입이기보다, 자기 표현이 허용되고, 다름이 존중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아이의 정서가 흔들릴 때, 학교가 너무 관여하지 않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을 어떤 부모들은 참기 어려워한다. 그래서 그 불안을 밖으로 밀어내며, 학교의 시스템이나 교사의 태도를 조심스럽게 문제 삼기도 한다. 그 경험을 공유하며 아이들은 어떤 방식으로 ‘문제가 없어 보이는 법’을 배워가고 있을까.
문제가 없는 사람이 되려는 삶은, 정말 좋은 삶일까?
STEAM 수업이 그저 최신 기술을 배우는 시간인 줄 알았다. 나중에야 그것이 자신의 관점으로 문제를 설정하고, 해결해보는 과목이라는 걸 알았고, 아이의 과제가 낯설게 보이기 시작했다.
문제 해결? 구조화? 아이들은 그저 좋아하는 선생님과 영상 찍는 것에 몰입했다. 선생님의 다이어트를 도와주는 슈퍼히어로가 되어, 함께 웃고, 뛰고, 연출했다. 중요한 건 문제 해결이 아니라 관계였다.
왜 문제보다 관계를 선택했을까? 왜 그 과제의 취지를 인식하기 어려웠을까? 단지 나이가 어리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한국에서 문제는 되도록 빨리 없애야 하고, 문제를 말하는 순간, 우리는 ‘문제가 있는 사람’이 된다. 아이 역시 문제를 구조화하는 법보다, 문제가 없어 보이도록 표현을 조절하는 법을 더 잘 배우지 않았을까? 그래야 배려받고, 불편하지 않은 사람으로 남을 수 있으니까.
“무엇이 불편해?”
“왜 그렇게 느꼈어?”
“어떤 질문이 드니?”
이 질문들은 앞으로 삶을 살아갈 자기가 누구이고, 어떤 마음을 가진 사람인지를 알 수 있는 기회일텐데 말이다. 이 질문 앞에서, 나도 질문하게 된다. 왜 나는, 괜찮은 엄마, 문제없는 아이, 사이좋은 가족으로 보이지 않을까봐 걱정했을까?
뮤약사(pharmtender@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