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고 일어나니 책이 모두 사라졌다. 상하이 입국을 앞두고 한국에 있는 모든 짐을 정리했는데, 그 중에는 묵은 책들이 있었다. 미련 묻은 전공 서적들과 내가 살아온 경험이 더 눈부셔서 더 이상 펼쳐볼 일이 없어진 유치한 자기계발서. 그리고 유행 지난 잡지들이 추려졌다. 노끈으로 야무지게 묶은 네 덩어리. 그리고 나와 함께 상하이 라이프를 시작할 선택받은 책들을 구분 지어 놓고 아버지께 말씀드렸다.
“여기 이쪽에 둔 책들만 가져가면 돼요.”
초저녁잠에 쫓기고 있던 아버지의 모습이 마음에 걸렸지만 들으셨겠지, 싶어 나도 방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버리는 책도 가져갈 책도 흔적 없이 사라진 것이다.
아버지는 제지 회사와 오랜 친분을 이어왔다. 집에 신문이 쌓이면 모아 두었다가 제지 회사에 가져갔고 새 A4용지로 바꿔 오셨다. 자원 순환에 일조하는 아버지의 성실함이 자랑스러웠고 새 종이가 방 한쪽에 쌓여 있는 모습은 쌀가마가 들어 차 있는 것처럼 든든했다. 새 종이는 내 스케치북을 대신했고, 시험 기간엔 깜지가 되기도 했으며 리포트와 원고를 받아 새겼다. 종이 걱정 없는 학창 시절을 보냈다.
이제 나의 묵은 책들이 새 종이로 다시 태어날 터였다. 웬만해선 그러려니 하는 성격인데도 텅 비어버린 책장 앞에선 주저앉았다. 아버지께 자초지종을 물으니 앞은 못 듣고 뒷말만 들은 듯한 눈치다.
“…… 책 가져가면 돼요.”
책이 많아서 옮기느라 힘들었다며 새 종이 더미를 챔피언 벨트처럼 내보이셨다. 헌책, 새 책 모두 날랐으니 고단하셨겠다 싶어 더 대꾸하지 못하고 방으로 들어가 한참을 훌쩍였다.
누군가의 편지글이 쓰여 있는 책, 갖고 싶어서 수소문했던 책, 한 번도 펼쳐보지 않은 새 책, 소장하고 있는 것만으로 어깨가 으쓱했던 책. 저마다의 사연이 있는 책들이 아른거려 원통하기까지 했다. 후에 내 SNS에서 ‘책 증발 사건’을 접한 문학 동지들은 나를 만날 때마다 책을 선물했다. (다들 여전히 잘 읽고 쓰고 계시는지.)

[사진= AI 생성 이미지]
‘강제 비움’을 당하고 홀쭉해진 내 책장은 상하이에 와서 점점 살이 쪘다. 한국 갈 일이 있을 때마다 사다 나르고, 중고 서적을 세트로 구매했으며 남편의 책과 합쳐 진열하고…. 집착의 날들이 이어진 덕분이었다. 어느 날 친한 선배에게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것처럼 책장의 헛헛함을 느낀다고 토로했더니 이런 명언을 날렸다.
‘책의 가장 나쁜 시나리오는 서가에 꽂힌 채 읽히지 않는 것이다.’
너무 내 얘기라 반박 불가. 그간 나는 먹지도 않을 거면서 보기 좋은 떡만 만드는 꼴이었다. 나쁜 시나리오를 쥐여준 책들을 보니 미안했다. 책의 저자도 힘들게 낳은 책이 먼지만 안고 사는 최후를 원하지 않을 테지.
그 후 책장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읽고 싶은 책이 생기면 도서관을 적극 이용하고 전자책에 익숙해지려 노력했다. 지인에게 어울리는 책을 골라 선물하기도 했다. 마치 북 소믈리에처럼. 무소유의 행복이란 이런 것일까. 뜻밖의 깨달음까지 얻었다.
책장 다이어트를 요요 없이 지켜왔는데 최근 책을 선물 받는 일이 여러 번 있었다. 뭐지,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 설렘은. 그리고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상하이에 있어서 그런지 한글로 된 책이 더 귀하게 여겨졌고 편지와 함께 온 책을 볼 때마다 그 사람이 떠올라 행복했다. 이쯤 되면 다이어트는 틀린 것 같다. 무소유 대신 소소한 소유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타협해 본다. 원래 다이어트는 다음부터 아닌가.
고운배(tj_jeong0308@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