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딸아이와 함께 공원을 걷다가 나는 문득 걸음을 멈췄다. 잔디 한가운데서 꼬리를 활짝 펼친 공작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깃털은 눈부시게 화려했고, 그 자태는 어딘가 도도해 보였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우리 엄마를 닮았네.”
연세가 있으신데도 늘 단정하게 머리를 정리하고, 외출할 때면 밝은 색 옷을 고르며 거울 앞에 한 번 더 서는 분. 어디에 있어도 시선을 끌지만 쉽게 다가가기에는 왠지 조심스러운 분위기. 멀리서 보면 거리감이 느껴지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누구보다 깊은 온기를 지닌 사람. 엄마는 꼭 공작을 닮아 있었다.
화려하고 도도한 겉모습과 달리, 엄마의 안에는 사람을 머물게 하는 따뜻한 기운이 있었다. 어디에 있어도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밝히며 중심이 되었고, 그 곁에는 늘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그렇게 많은 이들의 사랑 속에 머물던 사람이었지만, 엄마는 가장 가까운 사람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줄 줄 아는 사람이었다.
늦은 나이에 아이를 키우는 딸이 걱정된다는 이유 하나로, 엄마는 익숙한 삶을 내려놓고 낯선 도시 상하이로 건너왔다. 말도 통하지 않고 아는 이 하나 없는 곳에서, 엄마는 단 한 번도 힘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나보다 늘 먼저 딸아이를 챙겼고, 이유식을 먹이는 일부터 아이를 등에 업고 달래는 순간까지 언제나 엄마가 먼저 나섰다. 그 덕분에 두렵고 벅찰 것만 같았던 육아는 오히려 따뜻하고 단단한 기억으로 남았다.
스무 해의 시간이 흘렀다. 딸아이가 대학생이 되기까지 우리 집에는 늘 웃음이 머물렀고, 평범한 하루들은 겹겹이 쌓여 하나의 삶이 되었다. 엄마의 정성과 사랑 속에서, 아이 역시 사랑을 배우며 자라났다. 얼마 전, 대학에 간 딸아이가 가장 아끼는 스케치북의 첫 페이지를 조심스럽게 펼쳐 보였다. 그 순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숨을 고르며 한참을 서 있었다. 아이를 토닥이며 재우는 모습, 밥을 먹여 주는 모습, 등을 내어 주고 걸어가는 뒷모습. 그리고 정성스럽게 그려진 한 사람의 얼굴. 그 옆에는 작은 글씨들이 적혀 있었다.
“푸른 하늘 은하수 파란 쪽배에 계수나무 한 그루 토끼 한 마리…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는 늘 나를 재워 주시려고 노래를 불러 주셨어요.”
“엄마는 좋아하지 않으셨지만, 할머니는 언제나 밥을 먹여 주시고 텔레비전도 보게 해 주셨어요.”
“할머니는 어디를 가시든 항상 나를 등에 업고 다니셨어요.”
“나는 할머니를 정말 많이 사랑해요. 할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할머니예요.”
짧은 문장들이었지만, 그 안에는 한 사람이 지나온 시간과 감정이 고요히 담겨 있었다. 아이에게 할머니는 설명으로 닿을 수 없는 존재, 이미 삶 깊숙이 스며든 이름이었다. 나는 그 페이지를 오래 바라보다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아이가 그려 낸 것은 한 사람의 모습이 아니라, 엄마가 살아온 시간과 말없이 건네온 사랑의 방식이었다. 공작처럼 눈부신 겉모습 뒤에서, 엄마는 늘 조용히 사랑을 건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랑은 내게서 멈추지 않고, 아이의 기억 속으로 깊이 스며들어 있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엄마를 불러 본다. 화려함 속에 깊은 정을 품고, 말없이 시간을 건네는 사람. 그 사랑은 소리 없이 흐르다가 또 다른 삶 속에 스며들고, 나를 지나 아이에게로 조용히 이어진다. 그렇게 흐르고 이어지는 시간의 이름을, 나는 엄마라고 부른다.
상하이 린(1660323640@qq.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