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기를 보내고 여름방학식을 하는 날, 정든 아이들이 가깝게 또는 멀리 품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갔다. 한 친구는 아빠가 독일로 발령을 받아서 뮌헨에서 한 시간 반 거리 정도 떨어진 바이에른시로, 한 친구는 캐나다 영주권을 취득해서 캐나다로, 한 친구는 아빠 발령으로 한국으로, 한 친구는 국제학교로…….
모두가 새로운 발전을 위하여, 새로운 희망을 위해서 떠나가는 거지만 이별 앞에선 마음은 절로 코끝을 찡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런 때면 같이 지내다 학교를 옮겨 간 아이들이 어김없이 떠오른다.
떠나간 아이들이 가끔 메일을 보내거나 전화를 걸어오면 가슴 한 켠에 보관하고 있는 보물상자 속에서 제자들의 모습이 하나 둘 떠오른다.
전학을 가서도 주기적으로 한 번씩 전화를 걸어와 안부도 묻고 소식을 이어가고 있는 수민(가명)이라는 제자가 있다. 가끔은 어머니도 안부 전화를 하곤 하는데 6월 중순 경에 수민이 어머니께서 전화를 하셨다.
“어머? 수민이 어머니세요? 잘 지내시지요?”
“…….”
“무슨 일 있으세요?” 문득 불안감이 스쳐 지나갔다. 어머님께서는 그냥 전화 하셨다고 겨우 말씀을 하셨다. 하지만 내가 재차 묻자. 수민이 아버지께서 많이 안 좋으시다고, 자기도 몸이 많이 안 좋다고 그러시는 것이다. 병간호로 인해 자기 몸을 제대로 돌보지 않고 서울로 항주로 다니다가 최근에 몸이 이상해서 병원을 갔더니, 이 어머니 역시 암 선고를 받았고 지금 막 항암 치료 끝내고 집에 가는 길이인데 갑자기 생각이 나서 전화를 하셨다고 한다.
수민이는 어머니가 한족이시고 아버지께서는 여기에서 무역업을 하고 계셨다. 다문화 가정이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어머니도 무리 없이 우리말을 잘하시고 부모님 두 분 모두가 교육에 대해서 열의를 갖고 계셔서 수민이의 학교생활은 사회성도 굿, 학습상황도 굿, 거기다 예능적인 부분도 두각을 나타내어 한국상회 주최 그리기 대회에서 대상도 수상한 이력도 있는 아이였다.
그런데 2년 전에 아버지께서 몇 년 전부터 앓았던 갑상선 암이 심해져서 아버지는 치료를 위해 한국으로 들어가셔야 했고 수민이 어머니는 한국에 계시는 아버지 옆에서 병간호를 해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민이는 외조부모가 계시는 항주로 전학을 가게 되었던 것이다.
참, 하늘도 무심하시지! 내가 알기로 두 분이 어렵사리 국제결혼을 하셨고 그 뒤에 아버지 사업도 한창 잘 나가던 즈음에 갑상선 암이 생겼고 결국 병세도 심해져서 힘든 판국에 이제 어머니까지……. 전화를 받은 이후로 수민이 걱정으로 마음이 우울하였다.
그리고 며칠 전 항주에 갈일이 있어서 수민이가 방학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아버지와 어머니 건강은 어떤지 전화를 걸어 보았다. 그런데 결국 아버지께서는 암을 이기시지 못하고 6월 말에 운명을 달리 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수민이 어머니 역시 병세가 심해져서 입원 중이시고…….
상담을 하러 올 때도 꼭 두 분이 같이 오시고 사랑이 많은 가정, 다복한 가정이었는데, 몇 년 사이에 한 분은 못 돌아올 곳으로 한 분은 그 목전에서 힘들게 버티고 계시다니 가슴이 너무 아렸다.
나는 울고 있는데 수화기 저편에서 제자 녀석이 오히려 나를 달랜다.
“선생님, 저요. 공부도 열심히 할거구요. 엄마, 외할머니 말씀도 잘 들을 거예요.”
“그래. 기특하구나. 그래야지. 그래야지.”
집에 돌아와서 수민이를 위해 책과 문구 등 필요한 몇 가지를 사서 포장을 한 후 우체국으로 향했다.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수민이는 상해한국학교에서의 첫 해 제자였다. 그리고 그 다음 해인 4월에 전학을 갈 때 우리반 애들처럼 마음이 고운 학부모님들께서는 이미 반이 모두 갈린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서로 연락들을 하셔서 십시일반 아버님의 치료비를 모아 주시기도 하시는 등 완쾌를 빌어주시기도 하셨다. 참 아름다운 학부모들이었다. 이렇듯 많은 사람들이 격려하고 걱정해주는데 수민이가 더 이상 마음 아파하는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수민아, 부디 세상의 무게에 눌리지 말고 꿋꿋하고 씩씩하게 잘 크렴. 네 주변에는 항상 너를 응원하고 너를 위해 기도하는,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단다. 선생님도 너를 위해 항상 기도할게. 그리고 영원히 너는 선생님의 사랑하는 제자란다.’
▷ 백경숙(상해한국학교 교사)
ⓒ 상하이저널(http://www.shanghaibang.net),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