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신라면이 예전보다 매운맛이 덜해진 것 같다”라는 의견이 한국 소비자들 사이에서 널리 퍼지고 있다. 그러나 신라면을 제조하는 농심은 이에 대해 반박하고 있다. 실제로 신라면의 매운맛을 나타내는 스코빌 지수는 과거 2900에서 최근에는 3400으로 오히려 상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신라면이 매워지지 않았다고 느끼는 것일까? 그 해답은 우리 몸에 존재하는 ‘통증 단백질’ TRPV1과 혀의 신경 적응 현상에 있다.
매운맛의 주인공, 캡사이신과 TRPV1
음식의 매운맛을 책임지는 주요 성분인 캡사이신은 고추 내부에 존재하는 화합물이다. 캡사이신이 혀에 접촉하면, 혀의 세포에 있는 TRPV1(Transient Receptor Potential Vanilloid 1)이라는 수용체와 결합하게 된다. TRPV1은 본래 열이나 통증을 감지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데, 캡사이신이 이 수용체를 자극하면 신경세포가 활성화되면서 뇌로 ‘뜨거움’과 ‘아픔’에 대한 신호를 전달한다. 이렇듯 캡사이신과 TRPV1의 상호작용이 바로 우리가 매운맛을 느끼는 원리이다.
반복 자극에 둔감해지는 혀의 신경
처음으로 매운 음식을 입에 대면 혀가 강한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매우 매운 맛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신라면과 같은 매운 음식을 자주 섭취하게 되면, 혀에 있는 TRPV1 수용체와 신경세포가 ‘적응’하기 시작한다. 지속적으로 캡사이신에 노출되면 TRPV1 수용체의 반응이 점차 줄어들고, 신경세포가 전달하는 통증 신호도 감소하게 된다. 이를 우리는 ‘신경 둔감화’라고 부른다. 덧붙여, 신경 말단이 일시적으로 마비되어 매운 자극에 대한 감각이 감소하는 결과도 나타난다. 결국 같고 매운맛이라 할지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그렇게 느끼지 않게 되는 것이다.
신라면과 지낸 오랜 세월만큼 익숙해진 매운맛
신라면과 함께한 세월이 쌓이면서 우리의 입맛은 다양한 매운 국물과 면발 속에서 서서히, 하지만 확실하게 변화해왔다. 처음에는 그 강렬한 자극에 눈물이 나고 물을 찾아다니며 힘들었으나, 이제는 그 매운맛을 ‘정말 좋다’고 웃으며 받아들이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취향의 차이가 아니다. 과학적으로 보면, 혀에 위치한 TRPV1 수용체는 반복적인 캡사이신에 익숙해져 점차 민감성을 낮춘다. 즉, 우리 몸이 스스로 통증을 조절하는 법을 터득한 것이다.
신라면은 여전히 짙은 붉은 국물과 매운 향을 지니고 우리 식탁 앞에 놓인다. 하지만 그 맛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혀와 뇌는 과거와는 다르게 반응하는 것이다. 시간의 흐름으로 인해 내성이 생겼고, 반복적인 소비 속에서 무뎌짐과 익숙함이 더해진 셈이다. 지금 우리가 맛보는 신라면은 이러한 변화된 몸과 기억에서 비롯된 것이다. 변한 것은 라면 그 자체가 아닌,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감각이다.
학생기자 김지수(상해한국학교 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