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때 면세점 ‘싹쓸이 쇼핑’으로 유명했던 중국 관광객들이 달라지고 있다. 최근 한국을 찾는 중국 청년층 사이에서는 고가 브랜드보다 실속과 경험 중심의 여행이 새 흐름으로 부상했다. 경기 침체와 높은 청년 실업률, 생활비 부담 등 현실적인 요인이 겹치며 ‘합리적 소비’가 하나의 세대적 가치로 떠오른 것이다.
명품 대신 편의점·카페 투어
중국 청년들의 해외 소비 기준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2024년 한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 중 20~30대 비율이 절반 이상(약 57%)을 차지했으며, 이들은 면세점보다는 편의점, 로컬 카페, 뷰티 스토어 등을 즐겨 찾는 경향이 강했다. 실제로 바나나맛 우유, 불닭볶음면, 지드래곤 하이볼 같은 한국 편의점 인기 제품들이 샤오홍슈(小红书)나 틱톡(抖音)에서 ‘한국 관광 필수 아이템’으로 소개되며 큰 반응을 얻고 있다. 샤오홍슈(小红书)에는 “한국 편의점 간식 추천”, “성수동 카페 투어”, “3일 30만 원 서울 여행” 등의 해시태그가 달린 콘텐츠가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 중이다. 거대 쇼핑백 대신 감성 카페와 골목 맛집을 찾는 젊은 요우커(游客)들의 모습이 이제는 익숙해졌다.


[사진=샤오홍슈(小红书) 성수동 카페 추천 게시글(출처: 샤오홍슈)]
‘가성비’는 생존이자 가치관
이러한 소비 변화의 배경에는 경제적 압박과 가치관의 전환이 동시에 자리한다. 코로나19 이후 젊은 층 사이에 절약이 미덕으로 떠오르면서, 샤오홍슈에는 ‘짠 테크’ 열풍이 불었다. 실제로 “돈 아끼는 법” 등 절약 팁 게시물이 150만 건 이상 올라와 누적 조회수 1억 3,000만 회를 넘겼다. 청년 실업률은 14%를 웃도는 높은 수준을 지속하고, 월세와 물가도 치솟고 있다. 이 때문에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는 ‘节俭(절약) 트렌드’가 확산했다.
소비 여력이 줄어들자, 소비 철학도 바뀌고 있다. 딜로이트 중국의 ‘2025 중국 소비재 산업 보고서’는 “중국 소비자들이 과시적 소비에서 벗어나 품질과 실용성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이는 브랜드 평판보다 제품의 효율성과 실제 만족도를 우선시하는 소비 흐름이 확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처럼 명품 로고로 지위를 과시하기보다는, 가격 대비 만족도를 따지는 현실적인 소비를 지향한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가성비’는 단순히 돈을 아끼는 차원을 넘어 “내가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소비”로 받아들여진다. 중국 아이미디어리서치의 ‘2024 중국 청년 소비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18~25세 청년의 약 42%가 ‘가격보다 만족도’를 소비 기준으로 꼽은 것으로 나타났다. 즉 싼 물건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사지 않고, 비싸더라도 가치 있다고 판단되면 투자하는 식이다. 필요한 곳엔 쓰고 아낄 땐 아끼는, 이른바 ‘선택적 소비’로, 자기만족을 최우선에 두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요즘 젊은 층 사이에서는 ‘작은 사치’로 불리는 소소한 보상 소비문화도 자리 잡았다. 이러한 소비는 자신의 능력 안에서 자신을 돌보는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보이는 소비’에서 ‘느끼는 소비’로
이제 중국 청년들의 여행은 더 이상 쇼핑 중심이 아니다. 그들은 SNS에 명품 쇼핑백 인증사진을 올리는 대신, 감성이 묻어나는 카페 투어 인증 사진이나 친구들과 함께한 순간의 추억을 공유한다. “요즘 누가 명품 사나요?”라는 말처럼, 보여 주기 식 소비보다 직접 느끼는 경험을 중시하는 분위기다. 맥킨지 중국의 ‘중국 소비: 새로운 현실 속에서의 변화(2025)’에 따르면 중국 소비자들이 소유보다 개인적 만족과 경험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돈을 어디에 쓰는지가 곧 자신의 가치관을 드러내는 시대가 온 것이다.
한국 업계, 변화에 발맞추다
중국 청년들의 소비 패턴 변화는 한국 관광·유통업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실제로 2025년 8월 기준 국내 면세점을 찾은 외국인 쇼핑객 수는 전년 대비 17% 늘었지만, 면세점 매출은 25% 감소했다. 명품을 대거 구매하던 ‘보따리 쇼핑’ 수요가 줄고, 대신 합리적인 가격대의 일상 상품 소비로 무게중심이 옮겨간 결과다. 이에 발맞춰 대형 면세점들은 VIP 위주의 명품관 대신, 2030세대 여행자를 위한 중저가 브랜드 존을 확대하고 있다. 일부 호텔은 “1박 10만 원대 미니룸 패키지”를 내세워 가격에 민감한 청년층을 겨냥하고, 항공사들도 저가 운임이나 프로모션을 통해 젊은 개별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와 관광업계 또한 체험형 관광 콘텐츠를 확대하고 있다. 부산시와 서울시는 샤오홍슈(小红书) 등 SNS에서 인기인 코스를 반영해 새로운 ‘K-푸드·K-뷰티 투어’ 루트를 선보였다. 전통 관광 코스였던 경복궁, 명동뿐 아니라 MZ 세대 취향에 맞춘 성수동 카페거리, 홍대 K-팝 굿즈 숍, 한남동 편집숍 등을 연계한 이색 코스들이 개발되고 있는 것이다. CU는 명동·홍대·성수동 등 관광객이 많은 매장에서 알리페이(支付宝), 위챗 페이(微信支付) 등 중국 간편결제 서비스를 도입하고 외국인 전용 상품 코너를 운영해 중국인 관광객 매출이 크게 늘었다.

[사진=성수동 K-뷰티 행사(출처: 구글)]

[사진=간편 결제 도입으로 외국인 맞춤 서비스 강화한 CU(출처: 구글)]
한편, 전문가들은 한국 관광산업의 중국 의존도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도 높이고 있다. 관광업계 관계자는 “중국 관광객의 소비 구조가 변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동남아 등 다양한 국적의 여행객을 동시에 유치할 수 있는 다변화 전략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한국관광공사는 오뚜기 등과 협력해 K-푸드·K-관광 연계 콘텐츠를 통해 외국인 관광객 유치와 체험형 방한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등 관광 시장의 다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한때 요우커 특수에 기대어온 면세점·유통 산업의 한계가 드러난 만큼, 질적 성장과 시장 다변화로의 전환점이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결국 중국 청년들에게 ‘가성비 여행’이란 절약의 표현이 아니라, 스스로 정의하는 행복의 방식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이 이들의 변화를 섬세하게 읽어내고 맞춤 대응한다면, 중국 청년들의 발길은 다시금 한국으로 향할 것이다.
학생기자 박지원(저장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