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모옌의 작품으로 읽는 중국 2
중국 작가 모옌의 작품은 책장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붉은 수수밭>, <누안>, <행복한 시절>로 대표되는 영화화 작품들은 농촌과 전쟁, 도시 빈민의 삶을 전면에 내세우며 중국 현대사를 다른 각도에서 비춘다. 붉은 수수밭 사이를 질주하는 농민 군대, 도시로 떠난 청년과 눈 덮인 고향 마을, 국유기업 구조조정 이후 일감을 잃은 중년 남성의 초라한 일상까지, 세 편의 영화는 통계와 정책이 아닌 구체적인 얼굴과 몸의 감각으로 중국을 기억하게 만든다. 모옌의 소설이 만들어 낸 인물들이 스크린 위에서 어떤 삶을 살게 되는지 살펴보는 일은, 동시에 오늘의 동아시아에서 주변으로 밀려난 사람들을 다시 바라보는 일이기도 하다.
폭력의 향토성과 붉은 생명력: <홍까오량 가족>에서 영화 〈붉은 수수밭〉으로

[사진= <홍까오량 가족> 원작 소설책]

[사진= 영화 <붉은 수수밭> 포스터(출처: 바이두)]
장편 연작소설 <홍까오량 가족(红高粱家族)>은 일제 침략기 농촌을 배경으로, 한 가족의 폭력과 욕망, 생명력이 뒤엉킨 역사를 그린 작품이다. 이 소설은 수록된 단편·중편 〈홍까오량(红高粱)〉과 〈고량주(高粱酒)〉를 중심으로 장이머우(张艺谋)의 데뷔 영화 <붉은 수수밭(红高粱)>으로 각색되며, 모옌 문학이 영상 예술로 번역된 가장 강렬한 사례로 꼽힌다. 이 영화는 1988년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금곰상을 수상하며 모옌과 장이머우, 공리(巩俐)의 이름을 세계 영화계에 각인시켰다.
원작 소설이 손자의 회상 속에서 조부모 세대의 삶과 항일 전쟁을 파편적으로 교차시키며 폭력·기억·가문사를 복합적으로 보여 준다면, 영화는 이 구조를 연대기적으로 재배열해 ‘지우얼(九儿)’과 수수밭, 양조장, 항일투쟁으로 이어지는 직선적 서사극으로 재편한다.
소설이 피·악취·살해·보복 같은 이미지로 농촌과 역사의 어두운 층위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데 비해, 영화는 붉은 수수밭과 강렬한 빨강, 노래와 북소리 같은 시각·청각적 상징을 극대화해 야성·관능·생명력을 전면에 내세운다. 그 결과 문학 텍스트 안의 ‘잔혹한 향토성’은 스크린 위에서 ‘집단의 생명력과 여성 주체의 힘’으로 변주되고, 전쟁과 민족의 이야기는 국가와 영웅의 시선이 아니라 농민의 몸과 감각을 통해 다시 쓰이는 서사로 읽힌다. 이 한 쌍의 소설과 영화는 모옌이 구축한 고향 세계의 핵심 이미지들을 압축해 보여 줄 뿐 아니라, 1980년대 중국이 스스로를 세계에 어떻게 보여 주었는지를 상징하는 문화적 텍스트로도 의미를 지닌다.
귀향 이후에야 보이는 상실:
<백구와 그네〉와 영화 <누안>이 그린 농촌과 도시의 간극

[사진= <백구와 그네> 원작 책]

[사진= 영화 누안 포스터(출처: 바이두)]
모옌의 단편소설 <백구와 그네(白狗秋千架)>는 고향에 돌아온 화자가 한 여성의 삶과 잃어버린 시간을 회상하며 죄책감·상실·농촌 현실을 마주하는 서정적 이야기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누안(暖)>은 모옌 문학에서 ‘귀향’과 ‘남겨진 사람들’을 다루는 가장 섬세한 변주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영화 <누안>은 2003년 개봉했으며, 제16회 도쿄국제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작품이다.
원작에서 도시에 정착한 화자는 1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와 사고로 장애를 입고 가난과 육아를 떠안고 살아가는 ‘누안’과 백구를 마주하면서, 자신의 도피와 죄책감, 농촌과 도시 사이의 되돌릴 수 없는 간극을 차갑게 응시한다. 반면 훠젠치(霍建起) 감독의 영화는 같은 기본 설정을 유지하되 어린 시절의 첫사랑–배반–재회라는 정서선을 강조하고, 누안이라는 인물에게 더 많은 시선을 주며 멜로드라마적 톤과 향수 어린 분위기를 강화한다.
소설의 날카로운 사회적 관찰과 잔혹한 디테일 일부는 정제되는 대신, 안개 낀 들판과 버려진 그네, 얼어붙은 겨울 풍경 같은 시적 이미지가 전면에 배치되어 조용하지만 오래 남는 상실의 감정을 만들어 낸다. 영화와 소설이 포착하는 것은 개혁·개방 이후 농촌 청년들이 도시로 이동하던 시기의 중국 농촌이다.
이 두 작품은 도시화·인구 이동 속에서 ‘떠난 자와 남은 자’가 서로 다른 시간에 살게 되는 과정을 한 남녀의 관계와 한 마을의 풍경을 통해 보여 주며, 근대화의 성취 뒤에 쌓인 정서적 비용과 책임의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오늘의 독자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시사점을 지닌다. 동시에, 모옌 문학이 즐겨 다루는 ‘귀향’과 ‘남겨진 사람들’의 정서를 비교적 현실적인 톤으로 구현한 사례이기도 하다.
폐공장 끝에서 찾은 작은 행복:
<사부님은 갈수록 유머러스해진다>와 영화 <행복한 시절>

[사진= 사부님은 갈수록 유머러스해진다 원작 소설책]

[사진= 영화 행복한 시절 포스터 (출처: 바이두)]
<사부님은 갈수록 유머러스해진다(师傅越来越幽默)>와 영화 <행복한 시절(幸福时光)>은 같은 출발점에서 시작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뻗어 나간 느슨한 각색의 대표적인 사례다. 모옌의 원작은 실직 노동자의 생존을 유머와 풍자로 그려내며, 변화하는 도시 사회에서 인간의 존엄과 체면을 탐구하는 작품이다. 실직 노동자가 체면과 생계를 위해 묘지에 연인용 방을 만들고 장사를 벌이는 설정을 통해, 국유기업 구조조정 이후 하층 노동자의 불안한 생존 전략과 성·돈·권력의 추한 얼굴을 블랙코미디와 냉소적 유머로 드러낸다.
2000년 개봉한 장이머우(张艺谋) 감독의 영화 <행복한 시절>은 이 기본 아이디어를 가져오되, 다롄 변두리의 실직 노인과 시각장애 소녀를 중심에 놓고 가짜 호텔·가짜 마사지숍이라는 장치를 ‘작은 거짓말과 작은 행복’의 이야기로 변주하며, 사회 풍자보다 노인과 소녀의 관계에서 피어나는 온기와 슬픔에 무게를 둔다. 폐공장과 고철 더미, 낡은 버스 같은 공간들은 후기 사회주의 도시 주변부의 질감을 시각적으로 구현하고, 영화는 대작다운 스펙터클 대신 소시민의 일상과 감정에 밀착하는 방식으로 예술성을 확보한다. 이 두 텍스트를 함께 보면, 개혁·개방 이후 중국 도시에서 실직·노인 빈곤·체면의 경제가 어떻게 사람들의 삶을 비틀고, 동시에 그 속에서도 유머와 연대,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려는 욕망이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입체적으로 읽을 수 있다.
모옌의 대표작과 그 영화화 텍스트들은 20세기 이후 중국 사회를 ‘한 나라의 역사’가 아니라 한 동네, 한 가족, 한 사람의 삶으로 보여주는 이야기들이다. <붉은 수수밭>은 항일 전쟁 속 농촌 공동체와 가족의 생명력을, <누안>은 도시로 떠난 이들과 고향에 남겨진 이들 사이의 간극을, <행복한 시절>과 그 원작 <사부님은 갈수록 유머러스해진다>는 실직과 체면, 도시 하층민의 일상을, <개구리>는 한 자녀 정책 아래 농촌 여성과 가족이 겪은 몸의 기억과 죄책감을 전면에 내세운다. 농촌과 전쟁, 도시 빈곤과 실직, 떠남과 남겨짐, 출산과 몸의 문제를 입체적으로 묶어내는 점에서, 모옌과 그의 영화화 작품들은 오늘도 현대 중국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동시에 모옌이 포착한 세계는 더 이상 중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농촌과 지방의 쇠퇴, 불안정한 일자리와 노인 빈곤, 저출산과 돌봄의 부담, 성장 과정에서 누적된 불평등은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여러 나라가 함께 겪는 현실이 되었다. 모옌의 소설과 그 영화화 작품들은 이런 문제들을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라 구체적인 얼굴과 이름을 가진 인물들의 삶으로 보여주며, 그 속에서 끝까지 유머를 잃지 않고 서로를 돌보려는 마음, 작은 존엄을 지키려는 노력을 함께 비춘다. 지금, 이 시점에서 모옌을 읽고 본다는 것은 ‘저 먼 중국’을 구경하는 일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오늘을 조금 더 정확히 바라보려는 하나의 시선을 선택하는 일이며, 불안한 시대를 건너가면서도 여전히 이야기를 통해 서로를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다.
학생기자 박다인(저장대 중어중문학과 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