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문을 들어서는 남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실내는 불을 다 꺼놓아서 어두컴컴했고, 미리 모여 기다리고 있던 열두 명의 사람이 일제히 박수를 치며 남편을 맞았다.
곧 영상이 흘러나왔다. 전날 밤, 둘째 아이가 몇 시간을 들여 편집해서 만든 3분 30초짜리 영상이었다.베이징과 상하이에서 살아온 17년 시간의 조각조각들이 여러 장의 사진들 속에 담겨있었다. 17년 전에는 남편도 나도 젊었고, 아이들은 겨우 세 살, 한 살이었다. 중국에 대해 배우겠다는 그 이유 하나로 우리 가족은베이징을 선택했고, 처음 접한 중국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언어의 장벽, 낯선 환경에서의 육아, 경제적인 불안정, 미래의 불확실까지, 그래도 사진으로 남아있는 그때의 우리 가족은 넷이 참 여기저기 잘 다니면서 즐겁게 살았던 것 같다.
베이징에서 1년 반의 시간을 보내고, 상하이에서 15년을 보냈다. 남편은 아무런 연고도 없는 상하이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상하이 사무실 정착에 온 에너지를 쏟느라 스트레스로 여러 해를 보냈지만, 내 휴대폰 속 사진의 남편은 늘 아이들과 함께 밝은 표정이었다. 아이들 일이라면 만사 제쳐두고 제일 먼저 챙기는 딸바보 모습이 편집한 영상 안에도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성인이 되고 고등학교 졸업반이 되었고, 남편은 17년 중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귀임하게 되었다.
자리에 앉아 나오는 영상을 보던 남편이 눈물을 꾹 참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전날 밤 영상에 사용할 사진을 고르면서 몇 번 울컥울컥했던 내 심정과 같으리라. 막막하고 속상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해서 한숨과 눈물로 보냈던 숱한 밤들을 딛고 이제는 감히 ‘잘 살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희망과 좌절을 공평하게 절반씩 겪으면서 우리 가족은 각자의 자리에서 성숙해졌고 성장했다. 그 시간 속에 남편도 나도 건강의 문제가 생겼지만, 그래도 잘 버텨내자고 서로 다독이며 지금까지 왔다.
남편의 귀임 날짜가 결정되고, 15년 동안 꾸려왔던 사무실 정리도 시작됐다. 모든 집기를 팔고, 사무실도 새 인테리어를 위해 벽을 부쉈다. 중국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밤낮으로 뛰어다니고 고뇌했던 그 공간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남편은 서운하고 착잡했다고 한다. 남편은 귀임해도 여전히 중국 업무를 맡고 있어서 상하이에 출장도 자주 올 것이다. 그래도 상하이 주재원 생활을 정식으로 마치는 순간을 의미 있는 기억으로 남게 해 주고 싶었고, 지인들이 서프라이즈 파티를 열자고 추천했다. 장소는 지인의 식당이 되었다. 남편 몰래 남편 지인들에게 연락했고, 급하게 준비한 자리인데도 모두 기꺼이 시간을 내어 참석을 해주셨다.
영문도 모르고 딸에게 이끌려서 식당에 도착한 남편은 전혀 생각도 못 했던 자리였다고 했다. 식당 안은 둘째 아이가 디자인한 귀임 축하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고, 풍선 장식까지 해 두었다. 남편은 정말 깜짝 놀랐고, 남편의 귀임을 응원하고 축하하기 위해 그 자리에 함께 모인 사람들에게도 매우 고마워했다. 이날 우리는 그간 남편의 중국 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또 남편에 대한 깜짝 퀴즈 시간도 가지며 17년간의 추억을 나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가 말했다.
“이렇게 깜짝 파티도 해주는 부인이랑 딸이 어딨어?”
“없지… 고마워….”
남편의 대답에 둘째 아이가 바로 이어서 말했다.
“아빠 같은 사람도 없어. 아빠 최고!”
남편의 한국 생활은 중국에서보다는 조금 덜 바쁘고, 조금 더 행복했으면 한다. 이미 충분히 열심히 살아왔으니까.
올리브 나무(littlepool@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