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가운 친구가 다녀갔다. 일년에 두 번,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은 좋은 계절이 되면 조용히 찾아오는 향기로운 친구 계화 꽃이 조용히 피었다가 살그머니 갔다. 꽃송이가 크지도 않아서 피었는지 그다지 눈에 띄지도 않는 이 꽃은 꽃 피울 만한 계절이 되면 어김없이 찾아와서 바람에 자기의 존재감을 실어 보낸다. 계화 꽃 향기는 특히 밤에 즐기는 것이 제대로다. 산책하기 딱 좋은 계절에 사방이 조용하고 거기에 은은한 달빛까지 함께 해준다면 향기로움이 배가 되는 느낌이다.
열린 창문으로 바람에 계화 꽃 향기가 실려 오기 시작하면, 나는 이 꽃이 언제 질 것인가 벌써부터 아쉬워지기 시작한다. 역시 좋은 것은 누구나 알아보는 것인지, 누구든지 한번은 들어봤을 향수 샤넬 넘버5와 여러 유명 향수들이 계화 꽃을 원료로 쓰고 있다고 한다. 고요한 밤에 계화 꽃을 즐기며 산책하다가 엉뚱하게도 로봇이 생각났다. 이제 곧 집집이 로봇 한 대씩은 들여 놓게 될 듯 하루하루 발전이 눈부신데, 로봇이 향기라는 걸 느끼게 될 날도 올까 하다가, 그럼 미각은 어떤가에 까지 생각이 미치고 보니 역시 ‘로봇, 니들은 아직 멀었구나’하는 생각에 안심(?)이 됐다.
상하이에서 지낸 지 어느새 십여 년이 훌쩍 넘었다. 이쯤 되면 여기가 제2의 고향이라 마음을 줄 만도 한데, 앞으로도 당분간 몇 년은 더 있어야 될 듯하지만 속정을 주기는 힘들 것 같다. 도대체 여기는 ‘소곤소곤’이라는 단어가 없는가 싶게 웅변하듯이 평상시 대화를 하는 사람들,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중에도 휴대폰을 열고 자기 할 일을 하는 사람들, 남 신경 안 쓰는 사람들을 보면서 ‘속 편해 좋겠구나’ 싶다 가도 ‘더 있다가는 나도 어느새 저렇게 되겠네’ 싶어 움찔하기도 한다.
알고 지내던 친구들도 이제는 한국으로 많이들 돌아 갔고, 장차 나도 상하이를 떠날 그 날이 올 텐데 마음이 어떨까, 시원할지 아니면 섭섭할지 장담을 못하겠지만, 확실히 ‘세 친구’는 그리울 것 같다. 계화 꽃 향기, 새벽을 알리는 새소리, 그리고 사계절 내내 다양하고 맛있는 과일들.
상하이에서 아파트 저층에 살기 시작하면서 나는 새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중국 사람들이 새를 좋아해서 집에서 기르기도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에는 다양한 새들이 나무에 둥지를 틀고 살고 있다. 새벽 4시가 되기도 전, 아직 태양은 지평선 저 아래 어딘가 있을 듯한 때 새들은 벌써 날이 바뀐 걸 알고 조용히 지저귀기 시작한다. 무거운 솜이불처럼 내려앉은 어둠과 고요를 깨고 새 날을 알리는 청아한 새소리를 들으면, 몸은 피곤한데도 어쩐지 마음은 희망의 공기가 가득 차면서 하늘로 날아 갈 듯한 기분이 든다.
강산이 두 번 바뀌도록 상하이에 살다 떠나면서 추억할 게 고작 꽃과 새 그리고 과일이냐고 물어본다면, 그렇지는 않다. 기쁘고 행복했고 때로는 슬펐던 나의 시간이 모두 상하이에 있다. 그 시간들을 함께 한 많은 친구들, 그들과 함께 한 추억들이 모두 상하이에 있으니 상하이 시절은 내 인생의 보석 같은 시간이다. 그렇지만 언젠가 이 도시를 떠나, 산책하기 좋은 계절이 오거나 어디선가 새소리가 들리면 그때는 상하이가 생각나 ‘그리울’ 것 같다. 그렇고 그런 과일들, 밍밍한 맛의 과일들을 먹게 되면 또 어김없이 상하이 가 ‘그리워질’ 것이다.
수다쟁이(kijihe2025@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