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시(黄西, Joe Wong)는 라이스대학교 생화학 박사로부터 미국 주류 코미디계에서 성공한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유명하다. 검은 뿔테 안경에 강한 중국식 악센트가 트레이드 마크인 그는 조선족 3세로, 추이젠(崔健), 뤄융하오(罗永浩), 진싱(金星) 등 동시대 조선족 유명인들과 함께 과거 만주로 이주했던 한국 이민자 후대들이 현지 사회에 깊숙이 뿌리내려 문화적 융합을 이루고 큰 사회적 영향력을 지니게 된 대표적 사례로 주목받는다.
조선족 시골 소년, 무대를 꿈꾸다
황시는 1970년 중국 지린성(吉林省) 바이산시에서 태어났다. 어른들은 가정에서 한국어와 중국어로 자유롭게 대화했으며, 김치와 된장 냄새에 익숙한 전형적인 조선족 가정이었다. 지린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한 그는 전국 수석의 성적으로 중국사회과학원 석사 과정에 합격했다. 1994년에는 미국 라이스 대학 유기화학 박사과정에 합격해 텍사스로 가게 된다.
미국 유학을 위해 옥스퍼드 사전을 8번이나 독파해서 어휘력이 상당했던 그였지만 초기 미국에서의 적응 과정은 고군분투의 연속이었다. 수업 시간에 교수님의 농담을 이해 못 해 동기들이 다 웃을 때 늘 멀뚱히 있었다. 박사학위 취득 후 제약회사 연구원으로 지내던 어느 날, 우연히 동료들에게 이끌려 스탠딩 코미디 클럽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한 코미디언이 정치인을 풍자하는 모습을 보던 중, 그는 과학 논문처럼 유머도 일종의 논리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전제가 있고 결론이 있고 그사이에 예상치 못한 반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후 그는 낮에는 연구원으로, 밤에는 클럽에서 스탠딩 코미디를 익히기 시작했다.
98번의 실패, 코미디의 과학적 분석
다음 주에 그는 첫 오픈마이크 무대에 서봤지만, 참혹한 실패로 끝났다. 3분 만에 관객들의 야유를 들으면서 내려와야 했다. 과학자인 그는 이 실패를 하나의 실험 데이터로 정리했다. 자신의 공연을 녹음하고, 어떤 농담이 통하고 어떤 농담이 실패했는지를 꼼꼼히 기록하기 시작했다.
2년 동안 98번의 무대를 거치면서 그는 서툰 영어 발음과 진지한 표정을 자신만의 개성으로 승화시키는 방법을 터득했고, 자신의 중국식 악센트가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파악했다. 관객들이 그의 진지한 표정과 엉뚱한 농담의 괴리감에서 웃음 포인트를 찾게 된 것이다.
2005년 그의 꾸준한 연습은 마침내 빛을 보기 시작했다. 보스턴 코미디 페스티벌에서 우승을 차지했을 때 그는 무대 위에서 “이 상은 98번의 실패에 바칩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99번 만에 성공을 가능하게 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황시의 개그 코드… 이민자 정체성의 정확한 자조
2009년 4월 12일, 미국 최고의 토크쇼 ‘데이비드 레
터맨 쇼’에 초청된 그는 카메라 앞에서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황시입니다. 이민자입니다. 제 아들이 태어났을 때 사람들이 ‘이 아이는 미국 대통령이 될 수 있어’라고 했죠. 그런데 최근에야 그게 농담이라는 걸 알았어요. 왜냐하면 저처럼 생긴 사람은 대통령이 될 수 없거든요.” 스튜디오는 폭소의 도가니가 되었다.
황시의 개그코드를 몇 가지 소개하면,
•귀화 시험에 대해: “미국 시민권을 신청할 때 미국 역사 시험을 봤어요. 그들이 물었어요. ‘벤저민 프랭클린이 누구죠?’ 제가 대답했어요. ‘아, 동네 편의점이 털리는 이유가 되는 그 분인가요?’” (참고: 100 달러 지폐에 프랭클린 초상화가 그려져 있어, 편의점 강도 사건에서 자주 언급됨.)
•문화적 차이에 대해: “제 아들은 미국에서 태어나서 미국인이에요. 제가 말했죠. ‘미국은 자유의 나라야. 아빠한테 소리치고 책상 위에 올라가도 돼.’ 아들이 해봤더니 바로 책상에서 떨어졌어요. ‘이게 바로 자유의 맛이죠.’”
•과학자의 유머에 대해: “저는 암 연구를 많이 했어요. 물론 쥐를 대상으로 했죠. 사람들이 제게 말하더군요. ‘조 웡, 왜 인간을 대상으로 실험하지 않죠?’…… 제가 말했어요. ‘쥐는 저를 고소하지 않으니까요’”
그의 개그가 고급스러운 이유는 단순한 자기 비하가 아니라, 지적인 추구와 논리적 반전을 통해 미국 사회와 정치를 정면으로 조망하고, 미국 주류 사회로 하여금 이민자의 어려움, 문화적 차이와 갈등을 웃음 속에서 공감하게 만들어 부드러운 소통을 실현했기 때문이다.
“저는 중국에서 태어났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미국을 비판할 수 있는 나라죠.”
이런 유머는 미국뿐 아니라 중국 국내 관객들의 웃음과 호감까지 끌어냈다. 그는 2013년 중국으로 돌아와 스탠드업 코미디의 창작 기법과 공연 기법을 중국에 도입하며 초기 중국 스탠드업 코미디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황시 토크쇼’를 진행하며 큰 인기를 끌었는데 첫 회 녹화에서 그는 이런 농담을 했다.
“중국에 돌아오니 정말 친숙하네요. 특히 공기 중의 PM 2.5가 말이죠. 마치 고향 냄새를 맡는 것 같아요. “
이렇게 그는 중미 두 나라 문화를 잇는 특별한 ‘유머의 다리’가 되었다.
문화의 장벽을 넘은 ‘웃음 제조기’ 화학자
황시는 미국 주류 코미디계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최초의 중국 희극인으로, 그의 성과는 아시아계가 미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이룬 획기적인 이정표로 여겨진다.
유전자와 암 연구 분야에서 자신의 특허까지 있는 과학 실험실을 미련 없이 떠나 화학공학자에서 코미디 무대로 방향을 재설정한 그는 미국인들에게 중국인도 미국인의 언어와 유머 방식으로 그들의 최고 수준의 공공 의제 토론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동시에 중국인들에게는 자국인이 미국 문화의 중심에서 존중과 갈채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며 한국인들에게는 과거 이민의 후대들이 자신의 꿈을 이루는 과정에 어떻게 흐르는 물처럼 현지 사회에 유연하게 적응하고 끊임없이 노력하며 발전해 나갔는지 그 경이로운 삶의 변천 과정을 확인시켜 주었다.
“과학과 코미디는 닮았어요. 둘 다 예상치 못한 결과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견이 탄생하니까요.”
그는 이렇게 말한 황시가 걸어온 길은 특별하다. 황시의 스토리는 또한 분열과 다툼, 혐오가 심화되는 시대에 유머야말로 문화와 국경을 초월한 공용어이자 편견을 깨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며, 마음의 벽을 허무는 따뜻한 대화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만든다.
김향려(mschina0520@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