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의 삶과 문학, 이념과 화해를 둘러싼 대화
정지아 작가 상하이 북토크가 ‘삶은 어떻게 소설이 되는가’를 주제로 지난 9일 길상호텔에서 열렸다. 이날 북토크는 상하이 다양한 한인단체, 문화예술 인문 관계자 등 약 60여 명이 참석해 작가의 삶과 문학, 이념과 화해를 둘러싼 깊은 대화를 나눴다. 정지아 작가는 대표작인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쓰게 된 계기와 창작의 배경, 그리고 구례에서의 생활을 통해 깨달은 점들을 진솔하게 전했다.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역사와 감정, 시대의 그림자를 담아낸 그녀의 이야기에 청중들은 뜨거운 공감과 관심을 보냈다.
구례에서 다시 배운 평등과 인간
정지아 작가는 강연 서두에서 “나는 스스로 꽤 평등주의자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학벌이나 직업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다고 믿었지만, 구례에 살면서 그러한 내 생각이 머리로만 하는 판단에 불과했음을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서울대를 따지는 것과 뭐가 그리 다르겠는가. 똑똑한 건 우월한 것이고, 감각이 둔한 건 열등한 것이라 여겼다.” 그녀는 스스로의 인식 속에 배어 있던 서열과 평가의 잣대를 구례에서 완전히 내려놓을 수 있었다고 했다. 구례에서 만난 사람들은 자식의 성공 여부나 경제적 위치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표현하고 살아가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특히 ‘아들이 출세한 집’보다 ‘공부 못하고 고향에 남은 아들’을 둔 집이 더 활기차고 행복해 보였다는 이야기는 청중들의 깊은 인상을 남겼다.
“사람은 다 쓰일 데가 있다. 제자리에 쓰이고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정지아 작가가 구례에서 느낀 인생의 진리였다.
‘쟈는 정 없어’… 언어 속 삶의 깊이
정지아 작가는 구례에서의 언어 경험도 나눴다. “저 원래 옷 잘 차려입고 하이힐을 신었어요. 하이힐은 노동과 가장 먼 신발이죠.” 그녀는 이제 그 신발을 벗고 구례 사람들과 함께 걸으며, 말 한 마디에도 인생이 담겨 있음을 깨달았다고 전했다.
벚꽃구경을 함께 간 한 할머니가 “쟈는 정 없어”라고 말했을 때, 정 작가는 그 말 속에서 아주 가깝지는 않은 깊은 관계는 아닌 누군가를 잃어본 경험이 있다는 것을 알 것 같았다. 이어 “이번엔 산수유 보러 갈까요?”라고 묻자 “쟈는 속 없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꽃이 너무 빨리 져서 정이 없고, 너무 늦게 져서 속이 없다는 말. 언뜻 단순한 표현이지만, 그 안에는 살아온 시간과 관계의 결이 깊숙이 배어 있었다.
“분노보다 변화… 삶의 자리에 충실한 것이 희망”
청중 중 한 명이 ‘요즘 한국 정치에 대한 생각’을 묻자, 정지아 작가는 “분노할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념 간의 전쟁이 아니라, 기득권을 지키려는 소수와의 갈등일 뿐”이라며, 오히려 지금은 모든 것이 드러나고 있는 ‘홍수의 시기’라고 비유했다. 그리고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사람들이 이미 변화의 마음을 품고 있다는 뜻”이라며, “정치가 오히려 대중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얘기했다.
그녀는 “각자의 자리에서 성실히 자기 일을 하는 것, 그것이 가장 좋은 미래의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리더가 이끄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 개개인이 책임과 역할을 다할 때 진정한 변화가 시작된다는 메시지는 많은 청중에게 울림을 주었다.
이념의 세대를 지나… 가볍지만 깊은 이야기
빨치산의 딸로서, 그리고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작가로서 정지아는 이념의 무게를 누구보다 실감한 세대다. 그녀는 “아버지는 사회주의가 실패한 이론이라는 걸 알았지만, 청춘의 선택이 억울하지 않다고 하셨다”고 전했다. 하지만 작가로서 그 이야기를 다시 써 내려간 것은 “한풀이”였다고도 말했다.
“빨갱이라는 말로 손가락질을 받으며 살아온 세월, 그 근원이 틀려먹지 않았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정지아 작가는 그 마음의 짐을 문학을 통해 덜어냈다. 그러나 이념에 대한 평가는 별개의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사회주의가 멋지게 성공했다면 다를 수 있었겠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고, 그 이상을 현실로 삼기엔 무리가 있다”고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단순한 이념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무게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이자, 삶의 자리에서 진심으로 우러나온 이야기다. “이 책을 가능한 한 가볍게 쓰려 했다. 이념은 관념이고, 인간을 위해 만들어졌으나 인간을 억압하고 있다. 이념을 농담처럼 풀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다음 이야기, 어디로 향할까
차기작에 대한 질문에 정지아 작가는 “야쿠자 혈전”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꺼내며 청중의 웃음을 자아냈다. 오사카에 대한 정보 부족으로 아직 소설로 완성하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그녀의 이야기에는 여전히 경계 너머의 인간, 시대를 건너온 삶에 대한 관심이 깊숙이 배어 있다. 구례에서, 상하이에서, 그리고 이념의 시대를 지나온 한 작가의 시선은 지금 이 시대의 독자들에게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삶은 어떻게 소설이 되는가?” 그 대답은 어쩌면,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 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을지 모른다.
‘상하이저널 제2기 비즈니스 아카데미’의 특강으로 열린 정지아 작가 북토크는 상하이저널이 주최하고, 상해한국상회, 상하이화동한인여성경제인회, 상하이한인여성네트워크 공감, 노회찬재단 상하이모임 후원으로 진행됐다.
‘상하이저널 비즈니스 아카데미’는 경영과 투자 관련 강연 외에 ‘정치’와 ‘문학’ 분야 특강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1기 비즈니스 아카데미 정치 특강에는 김종대 전 정의당 국회의원님을 초청했고, 2기에는 지난달 최강욱 전 민주당 국회의원 강연이 열렸다.
또한 문학 분야 특강은 지난 1기에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의 이병률 시인을 초청했고, 이번 2기에는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정지아 작가를 초청해 북토크를 개최했다. 상하이저널은 올해 하반기 3기 비즈니스 아카데미를 준비 중이다.
고수미 기자
[사진=인사말을 하고 있는 상하이저널 오명 사장]
[사진=정지아 작가를 소개하는 상하이저널 고수미 편집국장]
[사진=사회를 맡은 이영미 KBS 성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