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혼, 무한히 친절한 도박
“그와 커스틴은 결혼을 하고, 난관을 겪고, 돈 때문에 자주 걱정하고, 딸과 아들을 차례로 낳고, 한 사람이 바람을 피우고, 권태로운 시간을 보내고, 가끔은 서로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고 몇 번은 자기 자신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바로 이것이 진짜 러브스토리다.”
‘일상의 철학자’로 유명한 알랭드 보통이 들려주는 찐(?) 사랑이야기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이다. 부부가 된 남녀의 일상을 더욱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게 만드는, 소설과 철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조금은 독특한 형식으로 쓰여 있다. 요즘 유튜브에서 볼 수 있는 한 편의 영화 리뷰를 보는 듯하다. 작가가 바라보는 ‘결혼’이라는 제도에서 사랑이 어떻게 지속될 수 있는지 풀어놓은 시선들이 꽤나 날카롭고 흥미롭다.
“결혼: 자신이 누구인지 또는 상대방이 누구인지를 아직 모르는 두 사람이 상상할 수 없고 조사하기를 애써 생략해 버린 미래에 자신을 결박하고서 기대에 부풀어 벌이는 관대하고 무한히 친절한 도박.”
작가는 현대사회는 부부가 모든 면에서 평등하기를 기대한다지만, 실제로 기대하는 것은 고통의 평등이라고 말한다. 소설에서 부부는 오랫동안 심리 치료를 시간과 돈이 남아도는 미친 사람들의 전유물로 여겨왔다. 그러다 아내가 신용카드 대금을 두고 남편에게 캐묻고 남편이 흥분해 의자 팔걸이 하나가 부러진 날, 두 사람은 상담 예약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치료사가 무엇 때문에 오게 되었는지 물었을 때 부부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결혼 후 겪고 있는 감정의 서사들을 쏟아낸다. 17년 전에 만났고, 둘 다 어렸을 때부터 한쪽 부모가 없었다. 그들의 삶은 바쁘고, 보람 있고, 가끔은 지옥 같다. 그들은 그렇고 그런 일들로 싸우는데 그녀는 그게 정말 싫다. 남편은 자주 처음에 사랑했던 그 남자와 다르다. 그녀에게 화를 내고, 문을 꽝 하고 닫는다. 욕을 한 적도 있다. 그는 아내도 냉랭하고 가끔 말없이 경멸하는 면이 있어 그를 절망케 한다. 일부러 화를 돋우려는 것처럼 보인다. 걱정거리가 생기면 그녀는 침묵에 빠져 그를 소외시킨다. 그녀가 과연 그를 사랑하기나 할까 하는 의문이 자주 든다.
상담을 통해 이들은 알게 된다. 불안해하면서 공격하고, 회피하면서 퇴각하는 그들을…. 그들은 서로를 몹시 필요로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말이 입 밖으로 새어 나올까 두려워한다.
결혼한 지 16년이 되고 나서야 남편인 라비는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낀다. 결혼이 단지 그 이수 과정에 등록한 사람에게만 중요한 수업을 해준다는 점을 감안할 때 준비는 예식에 선행하기보다 대개 10~20년 후에야 갖춰지는 것이 정상이라고 느낀다. 그리고 깨닫는다. 평범한 인생을 사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불안에 굴복하지 않을 용기, 좌절하여 남들을 다치게 하지 않을 용기, 세상이 부주의하게 입힌 상처를 감지하더라도 너무 분노하지 않을 용기, 미치지 않고 어떻게든 적당히 인내하여 결혼 생활의 어려움들을 극복할 용기, 이것이 진정한 용기이고, 그 무엇보다 더욱 영웅적인 행위라고 여기며 아내가 있으면 인생이 무엇을 요구하든 충분히 헤쳐나갈 수 있겠다고 느낀다.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 평생을 약속하고 맞춰 간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된다. 알랭 드 보통의 이 소설은 일상에서 겪게 되는 인물들의 생각과 심리를 적나라하게 노출시키고 그에 대한 관념들을 풀어놓는다. 그리하여 계속 문장들을 곱씹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김희영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하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