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서: Small things like these
소설의 여운이 너무나 길었다. 책장을 덮었다가 ‘그 장면이 뭘 말하는 거지?’ 하며 다시 뒤적였던 소설이었다. 120쪽 정도 분량이라 금세 읽었지만, 작가가 숨겨놓은 비밀들을 곱씹느라 읽은 시간보다 훨씬 오래 머물렀다.
이 책의 작가 클레어 키건은 1968년 아일랜드 출신으로, 24년간 단 네 권의 작품만을 썼다. <가디언>는 그녀의 소설을 “탄광 속의 다이아몬드처럼 희귀하고 진귀하다”고 평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1980년대 겨울 아일랜드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이다. 주인공인 펄롱은 야적장에서 일하는 석탄, 목재상이며 평범한 가장이다.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도 모른 채 자랐지만, 그는 늘 자신의 삶에 행운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날 펄롱은 강 건너 수녀원에 석탄을 배달하던 중 한 무리의 아이들을 본다. 그중 한 소녀가 자신을 꺼내 달라 애원하던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그곳 수녀원은 직업 여학교와 세탁소를 겸했는데, 마을에서 소문이 좋지 않았다. 타락한 여자들이 교화받는 곳이라고도 했고, 그저 ‘모자 보호소’라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모두가 수녀원의 뒷배가 되어주는 권력을 모르지 않아 본 것도 못 본 척했다. 펄롱의 아내는 남편이 그런 일 따위엔 무관심하길 바랐다.
작가는 주인공의 내면의 고군분투를 짧은 대사에 담아냈다. “미시즈 윌슨이 당신처럼 생각하지 않아서 다행이야. 그랬다면 나는 어디에 있었을까?” 괴로운 고민 끝에 그는 자신을 길러준 분의 사랑을 떠올렸다. 그분이 날마다 자신에게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자신을 보호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펄롱은 새카만 맨발의 여자아이와 언덕을 내려온다. 그가 수군거리는 사람들 사이를 걸어 나오며 읊조리는 독백 ‘어떻게든 해 나, 가, 리, 라’는 마음은 순진하고도 장엄하다. 마치 구세주처럼 모든 것을 잃은 한 생명을 구해 수녀원을 빠져나오는 모습이 슬로우 모션으로 그려질 정도로 내게는 뭉클했다.
태생의 비밀조차 풀지 못한 한 남자가 모두가 겁내고 누구도 건들지 못한 거대한 권력 앞에 돌을 던졌다. 있는 힘껏! 그 돌이 무엇을 무너뜨리기는커녕 흠집조차 내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을 삼키는 재앙이 되어 돌아올지언정…… 펄롱은 자신을 살게 해준 사람을 기억하며, 또 다른 사람을 살려낸다.
이 소설 속의 인물들은 허구지만, 주요 사건의 배경이 되는 강 건너 수녀원(막달레나 세탁소)은 실제로 존재했다. 1990년대 언론에 의해 집단 암매장이 폭로되며 여성에 대한 폭력과 억압의 실상이 드러난 곳이다. 짧지만 묵직한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 다양한 각도에서 반사되고 굴절되는 다이아몬드처럼, 이 작품이 당신에게는 어떤 아름다움으로 다가올지 궁금하다.
김영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