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인을 듣는 시간>(반비, 2021)의 저자 김현우는 다큐멘터리 PD이면서 번역가로 연세대학에서 영문학을, 대학원에서 비교문학을 공부했다. 2002년부터 EBS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는데 그의 다큐멘터리 작품으로는 EBS 다큐프라임 ‘내 운동화는 몇 명인가?’,’김연수의 열하일기’,’부모와 다른 아이들’ 등이 있다. 지은 책으로는 이 책 외, <건너오다>가 있다.
<타인을 듣는 시간>은 김현우 작가의 다큐멘터리 제작기인 동시에 논픽션 작품들에 대한 서평이다. 이 책에서 그는 방송을 위해 인터뷰하면서 만났던 ‘타인’들-신발 공장 노동자, 학교폭력 가해자, 성소수자, 트랜스젠더, 이주 노동자 등-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더불어 총 13권의 책을 소개한다.
“컨테이너선에서의 만남, 조지 오웰의 <위건 부두로 가는 길>” 편에서는 저자가 컨테이너선에서 일하는 선원을 찾아 인터뷰하면서, 조지 오웰의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다루었다. 석탄을 캐는 광부와 컨테이너선에서 일하는 선원은 우리에게 낯설고도 먼, 다른 세상 사람들이다. 석탄을 캐는 광부를 보면서 조지 오웰이 했던 생각과, 컨테이너선에서 일하는 선원들을 보면서 저자가 했던 생각이 다르지 않다고 본다. 같은 맥락으로 “내 운동화는 몇 명인가”라는 다큐멘터리는 운동화 한 컬레가 소비자의 손에 들어오기까지, 어떤 사람들의 어떤 일이 개입되었는지 알아보고 있다.
상품생산의 분업과 세계화 무역에 힘입어,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들은 시간적• 공간적 한계를 훌쩍 뛰어넘어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물건들이 철저히 낯도 코도 모르는 수많은 타인의 노동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는 이 분명한 사실을, 놀랍게도 그리고 부끄럽게도 늦게야 의식하게 되었다. 그들(타인)의 존재조차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들의 노동을 존중할 수 있는 능력과, 그들이 만들어낸 물건을 소중하게 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물건의 존재가 ‘쓸모’라는 이유만으로 작동될 때, 거기에는 감정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내가 열심히 일한 돈으로 산 것’이 물건에 대한 유일한 생각일 때, 우리는 그 물건을 내 맘대로 다룰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이 생기는지도 모르겠다.
책 속에는 이 외에도 우리가 개념으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 들어는 봤지만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 짐작은 하지만 상상만으로는 다가갈 수 없는 사람들 등 다양한 모습의 ‘타인’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서로 다른 환경 속 낯선 사람들이지만, ‘타인’으로 정의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우리는 김현우 작가의 카메라를 따라 나의 세계에서 나와, 타인의 세계를 엿보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다큐 PD라서일까, 책에서 인터뷰이의 소개나 설명은 지극히 사실적이다. 저자는 섣불리 ‘그’가 되어 ‘그’의 지나온 과거를 판단하지 않는다. 그 흔한 형용사나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들조차도 아낀다. 사실을 인터뷰하는 사람(PD)의 자리를 충실히 지키면서, ‘그'(인터뷰이)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일인지 상상해 보려는 노력을 보여주었다. 앞부분은 사실적으로, 뒷부분은 ‘내 자리’에서의 내 생각으로 엄격히 구분해 서술했다. 물론 어떤 사실을 인터뷰하고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지부터가 인터뷰어의 판단이기는 하겠지만, 선정된 사건 앞에서 모든 선입견을 배제하고 사실에 집중하려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타인의 세계를 인정하는 일, 그 세계가 나의 세계와 다르다는 점을 이해하는 일, 그의 언어를 인정하고, 그 차이를 알아가고 충분히 들어주는 일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타인과 연대한다는 건, 결국 ‘우리’라고 퉁쳐서 생각하지 않고, ‘타인’의 모습 그대로를 유지할 수 있게 하면서 각자의 자리에서 함께하려는 노력에서 온다고 본다. ‘각자의 모습을 유지한 우리’로 공존한다는 것의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이분선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하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