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 시장을 향한 걸음’
장웨이잉의 경제 철학
장웨이잉은 1959년생으로, 베이징대 교수이며 중국 경제학계에서 경제학 이론의 혁신가이자 경제 개혁의 이론적 기초를 다진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 중국이 시장 경제로의 전환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시점부터 그는 자유 시장 경제와 경쟁을 강조했다. 그의 학문적 주장은 단순한 이론적 추상에 그치지 않고 중국 경제 개혁의 실질적인 방향성을 제시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장웨이잉의 핵심 철학은 간단하면서도 강력하다. 그는 “경제 성장의 원동력은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경쟁”이라며, 시장 자율성이 경제 발전을 이끈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중국이 계획 경제에서 시장 경제로의 급격한 전환을 겪을 때 매우 중요한 이론적 기초가 되었고, 오늘날까지도 중국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의 경제학 이론은 민간 기업의 자유로운 경쟁을 강조하며 정부의 경제적 개입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효율적인 경제 성장을 추구했다. 시장 경제에서의 경쟁이야말로 혁신을 불러일으키고 기업들의 효율성을 극대화한다고 믿었다. 이러한 철학은 중국 경제가 글로벌 경제와 통합될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
우연의 연속, 장웨이잉의 성장기
중국 당대 경제학계의 거인으로 명실상부한 장웨이잉은 고등학교 전까지 속옷도 없어서 알몸으로 잤다고 하는데, 그가 태어난 산시성(陕西省)의 어느 찢어지게 가난했던 이 시골마을은 중국 유명 작가 루야오(路遥)의 대표작 ‘평범한 세계(平凡的世界)’ 속 배경이 된 고장과 멀지 않았다고 한다.
장웨이잉은 동네 다른 집들과 달리 등잔불 기름을 아까워하지 않았던 아버지 덕에 밤에도 책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고등학교 졸업 시점에 대학에 갈 수 있었던 것은 ‘문화대혁명’이 마침 끝나고 대학 입시가 회복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경제학 전공을 택할 수 있었던 것도 당시 시베이대학(西北大学)에서 경제학 전공을 신설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장웨이잉이 오늘의 성과가 있기까지는 그의 은사, 노벨 경제상 수상자인 옥스퍼드 대학교 제임스 멀리스(James Mirrlees) 교수의 가르침과 떼어놓을 수 없다. 그는 은사의 박학다식보다 문제를 사고하는 방식에 대해 많이 얘기했다. 멀리스 교수는 늘 제자들에게 큰 것을 구상하고 작은 일부터 착수하라고 건의했다고 하며, 문제 중에서 가장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부분을 파악해서 정확한 결론을 도출해 내야 한다고 가르쳤다고 한다.
멀리스는 또한 경제학자들이 직접적으로 정책 건의를 하고 정책 제정에 참여하는 것을 찬성하지 않았다고 하며, 경제학자들이 정부에 영향 주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정부 관료들을 교육시키는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장웨이잉은 자신의 인생은 우연의 연속이라고 했지만, 그의 인생의 우연적인 사건들을 살펴볼 때 반짝 지나가는 미약한 기회 또한 늘 책을 가까이했던 준비된 자에게 차례진 것임을 알 수 있다.
학문적 자유와 신념의 충돌
장웨이잉은 광화관리학원(光华管理学院)에서 교수와 학장으로 재직하면서 중국 경제학계에서 영향력 있는 지도자로 자리매김했다. 광화관리학원은 베이징대의 비즈니스 스쿨로, 중국 최고의 경영학과이자 아시아 금융 및 경영 연구를 선도하고 있다. 장웨이잉은 이곳에서 교수로서 경제학의 핵심 이론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았으며, 자유 시장 경제의 이론을 중국 현실에 맞게 적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고민했다. 학장직을 맡는 동안 중국 대학 체제 개혁에도 앞장섰다.
그는 학문적 깊이와 사회적 책임을 동시에 가르친 교수로 잘 알려져 있다. 학생들에게 경제학을 넘어서 비판적 사고와 경제적 책임을 강조하며, 현실적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을 제시했다. 제자들은 그를 단순히 이론을 전달하는 교수가 아니라, 인생의 중요한 가치와 경제적 사고를 배울 수 있는 멘토로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장웨이잉은 2010년에 광화관리학원 학장직을 돌연 사임하게 된다. 대학 개혁 추진 과정 중에 자신의 철학을 자유롭게 펼칠 수 없는 환경에 기인한 것이었다. 그의 학장 사퇴는 그의 평소 성격다운 학문적 자유에 대한 헌신과 개인적 신념의 일치를 위한 단호한 선택이었다. 이후에도 그는 중국 경제에 대한 비판적 사고와 자유로운 경제 환경을 강력히 주장하며 중국 경제 개혁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경제학자 린이푸(林毅夫)와의 설전
정부 개입 vs. 시장 자율
장웨이잉과 같은 베이징대 경제학자인 린이푸와의 설전은 중국 경제학계에서 굉장히 의미 있는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2016년도에 두 사람은 베이징대에서 열린 산업정책 포럼에서 정부와 시장의 역할 관련, 설전을 벌였다. 두 사람은 경제 발전을 위한 접근 방식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바, 린이푸는 개발 경제학을 강조하면서 정부의 개입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했으며 중국 같은 개발도상국에서는 산업화와 기술 혁신을 위해 정부의 강력한 개입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반면, 장웨이잉은 자유 시장 경제와 경쟁을 통한 경제 성장의 중요성을 주장했다. 그는 “시장 자율성”이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며 정부 개입은 시장 효율성을 해친다고 강조했다. 또한 “인류 인지능력의 한계와 보상 메커니즘의 왜곡으로 산업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경쟁하고 혁신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논쟁은 단순한 이론적 차이를 넘어서 중국 경제의 발전 방향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다룬 중요한 논의였다. 장웨이잉은 정부의 역할을 축소하고 시장 자율성을 강조하는 쪽에 있었고 린이푸는 정부의 산업 정책과 개입이 경제 발전에 필수적이라고 봤다. 일찍 1995년에도 국유기업 개혁 관련, 정부와 시장의 역할을 둘러싸고 두 사람은 한 차례 열띤 논쟁을 벌인 바 있다. 중국 두 대표적인 경제학자의 거듭된 논쟁은 중국 경제학계의 큰 이슈였으며 경제학적 접근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보여준 중요한 사건으로 회자되고 있다.
중국 경제의 미래를 설계
장웨이잉의 시장 중심의 경제 체재와 경제 성장 모델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은 중국 경제의 글로벌화를 이루기 위한 이론적 기반을 다졌다. 특히 중국 기업들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경제 환경을 조성하는 데 기여했다.
오늘날 중국 경제는 민간 경제와 국유 기업이 복합적으로 성장하는 모델로 발전하고 있다. 민간 기업들이 국제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혁신을 촉진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장웨이잉의 자유 시장 경제 주장은 중요한 정책적 가치로 간주되고 있다.
장웨이잉은 개방적이고 혁신적인 경제의 중요성과 함께 제도적 개혁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가 제시한 경제적 원칙과 이론들은 경제학의 미래를 바꾸는 이정표가 되었다. 시장 경제화가 진행됨에 따라 앞으로 장웨이잉의 연구와 철학적 신념이 중국 경제 발전에 더욱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되지 않을까 예견해 본다.
김향려(mschina0520@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