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가슴 뭉클하게 봤던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가 막을 내렸다. 주옥같은 대사가 많았는데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는 “개가 나아, 개가”이다. 이 말에는 애순이를 향한 관식의 맹목적이고 편파적인 태도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관식 엄마의 마음이 함축적으로 담겨있다. 결국 자식을 향한 짝사랑이 헛되다고 느꼈는지 효자라는 이름의 말 잘 듣는 강아지 한 마리를 데려와 키우게 된다.
“개가 나아, 개가” 이 한마디는 결혼 후 한국을 떠나와 살며 연로하신 부모님을 살뜰히 살피지 못하는 나를 자책하는 말이기도 하다. 결혼할 때는 중국과 한국은 가까운 나라니까 무슨 일만 생기면 불같이 달려올 거라 큰소리치던 호언장담은 어디로 가고 한국에 나가야 할 일이 생기면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거나 비행기삯 아깝다며 웬만하면 아이들 방학 때맞춰 나가려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 결정적으로 친정 엄마는 지금 자식보다 나은 개 한 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관식 엄마가 키우는 개 이름은 효자이고 우리 엄마가 키우는 개 이름은 백호다. 개에게 호랑이 이름을 붙여준 까닭은 24시간 용맹하게 엄마를 지키고 서 있기 때문이다. 백호는 엄마가 키우던 개가 아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얼마 되지 않아 자기 마음대로 엄마 집에 들어와 사는 개다. 아무리 집으로 돌아가라 말해도 듣지 않고 아빠가 타던 차 앞에서 몇 날 며칠을 버티던 개다. 그러다 우연히 실제 주인이 백호를 발견하고 어찌 우리 개가 여기와 있냐고 얼마 전부터 집을 나가 찾고 있다고 했다. 엄마 또한 이 개가 왜 여기 와서 있는지 영문을 모르겠으니 어서 데리고 가라고 했다. 골똘히 생각에 잠긴 주인은 아무래도 개에게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것 같다며 얼마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할머니 지켜주라고 보낸 것 같으니 키워보라고 했다. 아주 영리한 개이니 잘 키워 달라는 부탁과 함께. 그렇게 엄마와 백호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백호의 하루 일과는 다음과 같다. 엄마가 새벽에 밭에 가는 시간에 맞춰 대문 앞에 대기하고 있다가 엄마를 모시고 밭까지 간다. 앞서 가면서 길을 안내하고 밭에 도착하면 풀밭에서 놀다 “백호야 가자”라는 말이 떨어지면 다시 앞장서서 돌아오는 길을 안내한다. 낮에는 그늘진 곳에서 잠을 자며 쉬다가 저녁이 되면 퇴근하는 엄마를 대문 안까지 모셔다 드리고 대문이 잠기는 소리와 함께 전용 개구멍을 통해 집 밖으로 나온다. 그때부터 백호의 주된 임무가 시작된다. 백호의 임무는 엄마가 운영하고 계신 상가를 지키는 일이다. 아무도 백호에게 보초를 서라고 시킨 적이 없다. 이웃들의 제보가 이어지자 CCTV를 돌려보게 되었고 상가 중앙에 자리를 잡은 백호가 밤새도록 지켜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때 가족들은 백호의 마음에 크게 감동했다.
백호와 엄마와의 동행은 벌써 15년이 되었다. 백호의 나이를 사람 나이로 변환하면 80대 노인의 나이라고 한다. 해마다 새끼를 낳고, 행동도 민첩했던 백호는 요즘 평소보다 잠을 많이 자고 동작도 느려졌다. 개집에는 눈길도 안 주고 야외 취침을 고집하더니 이제는 개집에 들어가 잠을 잔다. 엄마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백호에게 고맙다고 말한다.

“백호야. 세상에 너 같은 개가 어디 있겠니? 나 같은 늙은이를 누가 이렇게 지켜주겠어. 정말이지 너무 고마워. 네가 매일 밤 지켜주니 얼마나 든든했는지 몰라. 아프지 말고 오래오래 살아라.”
바다 건너 상하이에 살며 늘 말로만 엄마의 건강을 걱정하고 있는 나와, 매일 같이 엄마 곁에서 친구가 되어주는 백호랑 누가 낫겠는가? 당연히 백호가 낫지 않은가? 관식이 엄마 말은 내 입장에선 100% 참이다. <개가 나아. 나보다 백호가 백 배 나아> 그러니 부디 엄마 곁에 오래오래 있어줬으면 좋겠다. 엄마 집에는 그 집 딸내미보다 나은 백호가 산다! 여름에 한국 가면 백호가 좋아하는 편의점 핫바를 매일매일 사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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