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이야기 21]
축전(祝典)과 축제(祝祭)
제가 ‘국민학교’에 다니던 1960년대에는 텔레비전조차 귀했던지라, 애 어른 가릴 것 없이 라디오가 좋은 동무였습니다. 노상 틀어 놓는 4구식 진공관 라디오에서는 ‘강화 도련님’ 같은 연속방송극뿐 아니라 뉴스, 다큐멘터리 등과 아울러, 이미자나 남진, 톰 존스, 베토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노래와 음악이 흘러나오곤 했지요. 그 무렵 제가 인상 깊게 들었던 곡 가운데 브람스의 ‘대학축전 서곡(Academic Festival Overture)’이 있습니다. 독일의 한 대학에서 브람스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준다고 하자 그 기념으로 작곡했다는 밝고 경쾌한 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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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중에 대학에 들어와 보니 5월마다 ‘축전(祝典)’이 아닌 ‘축제(祝祭)’가 벌어졌습니다. 저 곡 하나 때문만은 아니지만 ‘축전’이 더 익숙했던 저로서는 ‘축제’란 말이 영 목에 가시처럼 걸렸지만, 다들 그렇게 쓰니 저만 중뿔나게 ‘축전’이라고 우길 수도 없는 노릇이었지요.
‘축제’, ‘축전’은 서양 말인 ‘Festival’을 번역한 것입니다. 아마 일본식 한자어들을 우리말로 또는 우리식 한자어로 고치는 중에 ‘축제’라는 일본식 단어를 ‘축전’으로 바꾼 듯한데, 사람들이 잘 쓰지 않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도로 ‘축제’가 되어 버린 겁니다. 그러다 보니 브람스의 ‘대학축전 서곡’에서만 화석처럼 그 이름이 남아 있는 셈이지요.
요즘에는 곳곳에서 끊임없이 축제가 벌어집니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철따라 온갖 꽃 축제요, 먹을거리가 풍성한 곳에서는 또 그것으로, 그도 저도 아니면 일부러 어떤 볼거리를 장만해서라도 축제를 벌이니, 전국에서 축제가 끊일 날이 없지요.
저는 이 ‘축제’라는 말 대신 다른 말을 쓰면 어떨까 싶습니다. ‘제(祭)’라는 말은 우리나라에서는 ‘제사’라는 뜻으로 많이 쓰기 때문에 즐거운 분위기가 드러내야 할 ‘festival’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경건한’ 글자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이제는 거의 죽은 말이 되어 버린 한자어 ‘축전’을 되살리자는 것도 억지스럽습니다. 그러니 순우리말인 ‘잔치’나 ‘마당’, ‘놀이’ 등을 그때그때 사정에 맞춰 쓰는 게 어떨까 싶네요. 봄이면 ‘벚꽃 놀이’, 가을이면 ‘억새 마당’……, 괜찮지 않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