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대도시에서 마주치는 코스프레 복장 차림의 청년들, 방 안을 가득 채운 캐릭터 굿즈. 이는 단순한 취미를 넘어선, 중국 Z세대의 정체성과 문화 소비를 보여주는 풍경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중심으로 형성된 ‘이차원(二次元)문화’는 일본뿐만이 아닌 중국과 한국, 이제는 전 세계적으로 환호받는 콘텐츠 소비 형태가 되었다. 이제 코스프레, 굿즈 소비, SNS 콘텐츠 생산으로 확장되며, 중국의 Z세대는 애니메이션과 그 파생 문화를 통해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했다.
일본 애니메이션, 중국을 물들이다



[사진=세일러문, 슬램덩크,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 포스터(출처: 네이버)]
1980년대 초, 개혁 개방 정책이 본격화되던 시기에 중국이 서구 및 아시아 문화 콘텐츠 수입에 점진적으로 문을 열기 시작하면서 일본 애니메이션은 처음 중국에 발을 들였다. 『우주 소년 아톰』이 중국중앙텔레비전(CCTV)을 통해 처음으로 정식 방영됐고, 일본 애니메이션은 중국 대중문화 지형에 본격적으로 진입했다. 이후 세일러문, 슬램덩크, 짱구는못말려 등의 일본 애니메이션이 1990년대 중국 지방 TV 방송국을 통해 연이어 방영되며 어린이와 청소년 세대의 일상 속에 깊이 뿌리내렸다.
한편, 중국 정부는 2006년부터 해외 애니메이션의 프라임타임 방영을 제한하고 자국 애니메이션 산업을 보호하는 정책을 시행했지만, 이는 오히려 인터넷을 통한 애니메이션 소비 증가로 이어졌다. 팬 서브 (同人字幕) 문화와 P2P 파일 공유, DVD 해적판 유통은 2000년대 초중반 ‘오타쿠’ 문화의 씨앗이 되었다.
그리고 2009년, 이러한 흐름의 정점에 선 플랫폼이 등장한다. 바로 ‘빌리빌리(Bilibili)’다. 원래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공유하고 감상하기 위한 커뮤니티 사이트였으나, 이후 실시간 탄막 댓글 (弹幕), 사용자 콘텐츠 생산(UGC), 라이선스 확보를 통해, 2014년에 합법적인 콘텐츠 플랫폼으로 전환했다. 결과적으로 TV에서 시작된 전파는 디지털 플랫폼으로 확장되었고, 이는 곧 팬덤, 굿즈, 코스프레 등 다층적인 ‘이차원(二次元) 문화’로 진화해 오늘날 중국 청년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하게 되었다.
콘텐츠를 넘어 소비문화로
애니메이션이 대중적인 콘텐츠로 자리 잡으면서, 이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파생 소비문화도 빠르게 성장했다. 특히, 중국 Z세대는 애니메이션을 중심으로 한 ACG 문화 속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 ACG란, 애니메이션(Animation), 만화(Comic), 게임(Game)의 앞 글자를 딴 용어로, 이는 단순한 취미를 넘어 콘텐츠 생산, 굿즈 소비, SNS 브이로그 제작까지 아우르는 포괄적 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2024 중국 이차원 콘텐츠 산업 보고서 (2024中国二次元行业报告)에 따르면, 2024년 중국의 이차원 문화 시장 규모는 약 2,700억 위안 (한화 약 5조 1,597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 대비 약 22% 성장한 수치로, 애니메이션을 중심으로 한 콘텐츠 산업이 중국 Z세대 사이에서 확고한 소비문화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중 굿즈 · 코스프레 등 파생 상품 시장은 약 1,689억 위안(한화 약 3조 2,296억 원)으로, 전체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특히 굿즈 분야는 굿즈 경제 (谷子经济)’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한정판 수집품과 팬덤 중심의 소비가 두드러진 성장을 이끈 것으로 분석됐다. 이후, 2025년에는 이차원 콘텐츠 산업 전체 시장 규모가 3,200억 위안(한화 약 6조 1,148억 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며, 파생 상품 시장 규모 역시 2,000억 위안(한화 약 3조 8,218억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진=중국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의 풍격(출처:바이두)]

[사진=부스 앞에서 굿즈를 살펴보는 관람객들(출처: 바이두)]
중국의 대표 쇼핑 플랫폼 타오바오(淘宝)에서는 ‘애니메이션 굿즈 (动漫谷子)’ 카테고리가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이 카테고리에는 피규어, 아크릴 스탠드, 열쇠고리, 포스터, 의류 등 다양한 상품이 있다. 일부 한정판 상품은 타오바오(淘宝)의 중고 판 버전으로 불리는 셴위(闲鱼)등의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원가 대비 2~3배 이상의 가격으로 거래되며, 팬심과 희소성이 결합한 ‘수집 경제’가 형성되고 있다.
이러한 애니메이션에 대한 애정은 단순한 콘텐츠 시청이나 굿즈 구매에 그치지 않는다. 매년 베이징, 하얼빈, 항저우 등 주요 도시에서는 중국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CICAF), CCG EXPO, Comicup 등 대형 박람회가 개최된다. 항주일보(杭州日报)에 따르면 2024년에 경우, 총 900만 명 이상의 관객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참여했으며, 이 중 주 행사장인 항저우 백마호 국제 컨벤션 센터 (杭州白马湖国际会展中心)와 부속 행사장인 중국 애니메이션 박물관 등 오프라인 현장에는 약 23만 3천 명이 방문했다 .
이들 행사는 단순한 전시 공간을 넘어, 굿즈 유통과 팬덤 교류가 이뤄지는 곳 이다. 행사장 내에는 굿즈 판매 부스가 수백 개에 달하며, 명일방주와 같은 인기 게임 같은 경우 일부 인기 캐릭터의 한정판 굿즈는 오픈 10분 만에 완판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사진=각 태그를 샤오홍슈에 쳐보면 나오는 다양한 사람들의 후기들 스크린샷(출처: 샤오홍슈)]
주요 행사장에는 캐릭터 복장을 코스프레 한 일명 ‘코스어(coser)’ 들이 몰려들며, 포토존과 길거리, 전시장 복도까지가 촬영 공간이 된다. 참가자들은 단순히 사진을 찍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스타일로 캐릭터를 재해석하거나, 친구와 팀을 이뤄 단체 촬영을 기획하기도 하는 등, 일부는 자체 영상 콘텐츠를 제작해 빌리빌리(Bilibili)나 샤오홍슈(小红书)에 업로드 하며 서로의 공감대를 형성한다.

[사진=“온양갱” 채널의 공구 영상 섬네일(출처: 유튜브)]
특히 샤오홍슈 (小红书)에서는 만화전시회 브이로그(漫展vlog), ‘오타쿠 방 전시(宅家展示), 코스프레 튜토리얼(Cosplay教程) 등의 태그가 꾸준한 인기 검색어로 자리 잡고 있다. 여성 사용자들 사이에서는 코스프레 메이크업 튜토리얼, 코스프레 의상 제작 과정 공유, 포토샵 보정법 소개 등 코스프레를 중심으로 한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 실제로 샤오홍슈에는 ‘내가 만든 코스프레 의상 공유’ 태그에 수만 개의 게시물이 올라오며, 자작 굿즈를 판매하는 창작자 계정도 늘고 있으며, 한국 코스어에 경우 타오바오에서 의상들을 몇십만 원씩 공구(공동구매) 하는 경우도 많다.
일상에 스며든 애니메이션, 모두에게 환영받나
이러한 애니메이션 문화는 이제 단순한 유행을 넘어 일상 속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주요 숏폼 플랫폼의 스크롤만 조금 내려보아도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를 활용한 콘텐츠가 끊임없이 등장한다. 짧고 강렬한 형식의 콘텐츠는 이차원 문화를 더욱 빠르게 확산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마냥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사진=2022 여름 축제 당시의 축제 사진들(출처: 바이두)]
우선 학부모와 교육계 일각에서는 “애니메이션과 코스프레가 학생들의 현실 도피 성향을 부추긴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특히 고등학생이나 대학생들이 학업보다 캐릭터 소비나 만화 관련 활동에 몰입하는 경우, 학업 스트레스 회피와 생활 리듬의 불균형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예를 들어, 한 중학교 교사는 “학생끼리 굿즈 교환이나 코스프레 동아리 활동은 긍정적이지만, 수업 시간에 캐릭터를 그리고, 인터넷 덕질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모습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특히, 일부 일반인들은 일본 문화 요소가 강한 콘텐츠에 대해 민족 감정과 관련된 논란이 발생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2022년 중국의 난징(南京) 외에 여러 도시에서 일본 전통 축제를 모방한 ‘여름 축제(夏日祭)’ 행사가 개최되려 했으나, 일부 난징 네티즌이 일본풍 무대, 음식, 의상 등 ‘일본 전통 축제를 과도하게 재현했다’며 신고했다. 이후 신위시 문화관광국(新余市文化广电新闻出版旅游局)와 같은 일부 지역의 정부들은 공식 발표를 통해 “여름 축제는 부정적 영향이 크며 민족 감정을 해치는 행사”로 규정하고 강력히 대응하겠다.라며 단순한 행사 취소를 넘어서, 중국 내에서 이차원 문화의 일본 문화 요소 수용 여부에 대한 민감한 사회적 논쟁을 상기시켰다.
반면, 긍정적인 평가도 뚜렷하다. 중국 대도시의 거리에서는 캐릭터 복장을 한 코스어(coser)들을 어렵지 않게 마주칠 수 있다. 이들은 더 이상 타인의 시선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다. 눈치를 보기보다는, 자신의 취향을 당당히 드러내며 도심 한복판을 자유롭게 활보하는 모습이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절강대 재학 중인 류씨의 경우 “저는 애니메이션에 관심 없지만, 그런 사람들 보면 되게 열정적인 것 같다. 자기가 좋아하는 걸 그렇게 표현한다는 게 멋있어 보인다”라는 평을 남겼다.

[사진=’까르보승엽’ 채널의 중국 코스어 인터뷰 영상 스크린샷(출처: 유튜브)]
유튜브 채널 ‘까르보승엽’에서 공개한 영상에서는 중국 청두(成都)의 코스프레 광장에서 활동하는 코스어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영상에서 한 코스어는 “코스프레는 단순한 취미를 넘어 일종의 놀이”라며, “캐릭터를 통해 현실에서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이나 성격을 드러낼 수 있다”고 말했다. 절강대 코스프레 동아리에 다니는 천양의 경우, “애니메이션을 통해 새로운 사람들과 같은 취미를 공유할 수 있고, 공동체 의식을 느낄 수 있어 즐겁다”고 말했다.
이 애니메이션 문화는 이제 일부 ‘덕후’만의 취미가 아니다. 굿즈를 사고, 코스프레를 준비하고, SNS에 브이로그를 올리는 일련의 행위는 Z세대에게 일종의 문화가 되었다. 누군가는 이 문화를 현실 도피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중국의 청년들은 이를 통해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당당히 표현하고 있다.
물론 이 문화가 점차 주류 문화로 자리 잡으면서, 현실 도피, 과몰입, 전통 가치관과의 충돌과 같은 우려도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이 문화를 통해 많은 사람들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표현하고,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연결되며 자신만의 삶의 리듬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러한 갈등은 중국 사회에서 새로운 문화 현상이 받아들여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볼 수 있다.
학생기자 전소윤(저장대 멀티미디어학과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