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3월,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 양회(兩會)가 막을 내렸다. 매년 개최되는 중국의 최대 정치 행사인 양회는 올해 ‘제15차 5개년 계획(2026-2030년)’의 첫해를 여는 자리였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받았다.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로 구성된 이 자리에서는 향후 5년간 중국이 나아갈 방향과 구체적인 정책 과제가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중국 정부는 이번 회의를 통해 국가 발전의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했으며, 그 중심에는 ‘고품질 발전(高质量发展)’이라는 핵심 기조가 자리 잡고 있다. 이는 과거 양적 성장 위주의 경제 운영에서 질적 성장과 내실을 다지는 방향으로 정책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신질생산력(新质生产力) – ‘기술 주권’의 시대
이번 양회에서 가장 뜨겁게 논의된 개념은 ‘신질생산력’이었다. AI, 양자 컴퓨팅, 바이오 기술 등 첨단 분야를 통해 국가 경제 구조 자체를 혁신하겠다는 중국의 강력한 의지로 해석된다. 리창 총리는 정부 업무보고에서 ‘AI+’ 전략을 천명하며 AI를 제조·의료·교통 등 전 산업에 확산하겠다고 밝혔고, 양자 기술·뇌-컴퓨터 인터페이스·6G 등 미래 산업 육성 계획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신봉섭 전 주선양 한국 총영사는 CGTN과의 인터뷰에서 “신질생산력은 ‘기술 주권’의 제도화”라며 “중국의 역할이 ‘저비용 생산기지’에서 기술·표준·플랫폼 허브로 이동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이번 예산안에서 반도체 자급률 제고와 AI 고도화 등 핵심 전략 산업에 대한 과학기술 예산을 전년 대비 10% 이상 증액했으며, 2,000억 위안 규모의 초장기 특별 국채를 발행해 설비 업그레이드와 기술 혁신을 지원할 계획이다.

산업현장 작업라인에서 일하고 있는 휴머노이드 로봇(출처: 중국 제일재경)
이는 기술 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중국이 선택한 생존 전략이자 미래 성장 동력이다. 반도체 분야에서는 현재 연 2만 장 수준인 첨단 웨이퍼 생산능력을 2030년까지 50만 장 규모로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으며, 중앙 국유 기업들도 양자정보·핵융합 등 미래 산업에서 선도적 역할을 수행하도록 독려되고 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AI 등에서 중국의 기술 자립 가속화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거대 시장의 진화, 내수 확대와 쌍순환
중국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를 4.5~5.0% 구간으로 설정했다. 이는 지난해 목표치인 ‘5% 안팎’에서 소폭 하향 조정된 수치로, 양적 성장보다 질적 성장에 집중하겠다는 현실주의적 접근으로 평가된다.

[사진= 리창 국무원 총리 베이징 인민회의당에서 업무 보고 모습]
리창 총리는 정부 업무보고에서 “외부 환경의 불확실성이 증대되고 국내 수요 부족이 지속되는 상황”이라며 내수 진작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중국 정부는 내수 확대를 위해 2,500억 위안 규모의 초장기 특별 국채를 투입해 소비재 이구환신(교체)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1,000억 위안 규모의 재정·금융 협조 기금을 조성해 내수 확대를 추진하기로 했다. 또한 소비자와 서비스 업체에 대한 대출 이자 보전 범위를 확대하는 등 실질적인 구매력 제고에 나섰다.
주목할 점은 단순한 소비 쿠폰 지급을 넘어, 소비자의 ‘구매력’ 자체를 끌어올리기 위한 정책들이 병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도시와 농촌 주민의 소득 증대 계획을 시행해 저소득층의 수익을 높이고 재산 소득을 늘리며 보수 및 사회보장 체계를 개선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는 14억 인구의 거대 내수 시장이 ‘양’에서 ‘질’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중국의 소비 시장은 규모 확장에서 품질 고도화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퍼스트 경제(첫 매장 경제)’, 반려동물 경제, 중국풍(國潮) 제품, 몰입형 체험 등 새로운 소비 형태가 부상하고 있으며, 돌봄 경제나 ‘정서(감정) 경제’로 대표되는 서비스 소비 활성화도 주요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또한 농촌 지역과 고령층의 소비 잠재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현급 상업 활동의 품질과 효율성을 제고하고, 실버 경제(고령 친화 산업) 육성에도 나설 계획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해외 브랜드와 제품군도 새로운 전략을 모색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중국의 소비시장이 품질과 브랜드 중심으로 재편됨에 따라 헬스케어, 친환경 제품, 콘텐츠와 라이프스타일 산업에서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있다. 철저한 현지화 전략과 차별화된 품질이 뒷받침될 때, 진화하는 중국 시장에서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조언이다.
제도형 개방으로의 전환

[사진= 상하이 자유무역시험구 린강(臨港) 신지구의 디쉐이호(滴水湖)(출처: 인민일보 해외판)]
중국은 기술 자립 가속화와 동시에 ‘높은 수준의 대외 개방’도 천명했다. 리창 총리는 정부 업무보고에서 “서비스업을 중점으로 시장 진입 개방 분야를 확대하겠다”고 밝히며, 부가가치 통신, 바이오 기술, 외상 독자 병원 등 분야의 개방 시범 사업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또한 ‘디지털 경제동반자협정(DEPA)’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의지도 재확인했다. 이는 단순한 상품 교역을 넘어, 규칙과 제도 자체를 국제 기준에 맞추는 ‘제도형 개방’을 의미한다.
중국의 개방 확대는 통신, 바이오 기술, 의료 등 서비스업 분야에서 외국 기업과 인재의 진출 기회를 넓힐 수 있는 신호다. 2026년 중국 양회는 ‘신질생산력’을 핵심 축으로 기술 자립, 내수 진작, 제도적 개방이라는 세 가지 방향성을 동시에 제시했다. 대외적으로는 기술 패권 경쟁에 대응하고, 대내적으로는 내수 시장의 질적 고도화를 추구하며, 동시에 국제 규범과의 정합성을 높이려는 복합적인 전략으로 읽힌다.
중국 경제는 ‘고품질 발전’이라는 기치 아래 숫자로 보이는 성장률보다 내실을 다지는 방향으로 정책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이는 단기적 경기 부양에 익숙했던 기존 패러다임의 변화를 의미한다. 2026년, 변화하는 중국 경제의 지형도를 읽는 것은 국제 비즈니스와 학문적 교류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에게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중국의 정책 방향을 이해하고 한국의 강점과 결합할 수 있는 지점을 찾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학생기자 김하연(저장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