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다 읽고 나서야 ‘출간에 부쳐’라고 쓴 작가의 말을 보았다. 소설인 줄 알고 읽기 시작했으나 누군가의 진짜 일기를 토대로 쓴 글이라는 것을 그 글을 읽고 나중에야 알았다. 예술 작품을 감상할 때, 어떤 이는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 하고 또는 ‘감상하는 자의 몫이다’라고도 한다. 미술작품은 될수록 작가가 붙인 제목을 보지 않고 보는 습관이 있는데 작품을 어떻게 볼지는 각자의 선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뭐가 맞는지 사실 나도 잘 모른다.
사람들은 친구들과 안부를 주고받을 때 “건강히 지내”라는 말을 자주 하고, 다른 무엇보다 건강이 최고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건강할 때는 별 관심을 가지지 않다가 몸이 위험 신호를 보내야만 허둥지둥 관심을 쏟고, 그러다 나아지면 몸은 금세 관심 밖으로 밀려나기 일쑤이다. 나의 경우도 그렇다. 갑자기 닥친 치통이나 두통과 요통 등을 해결하려고 치료법을 검색하고 병원을 찾고 잘못된 습관은 없는지 내 몸을 유심히 살펴보다가도 치료나 약을 통해 또는 시간이 지나 그 고통이 사라지면 금세 다른 일에 신경 쓰느라 내 몸이 속삭이는 소리를 듣지 않는다.
주인공은 극심한 공포 상태에서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들 때문에 난처한 일을 겪은 열두 살 때부터 자신의 몸에 대한 관찰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주변에서 철없는 십 대를 보면 눈살을 찌푸리다가도 너무 일찍 성숙해 버린 애 어른 같은 아이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생기기도 하는데, 주인공은 후자에 해당한다.
늘 몸과 마음이 아팠던 아버지, 그에게 삶의 희망이 되어줄 수도 있을 거라는 일방적인 엄마의 기대로 세상에 나오게 된 아이인 ‘나’는 엄마의 기대(아버지의 회복)에 못 미치자, 엄마로부터 방치되어 아픈 아버지 곁에서 자란다. 다행히 집안일을 도와주는 비올레트 아줌마의 무한한 사랑을 받긴 하지만 엄마에게서 받은 상처가 너무 크다. 그래서인지 몸에 관한 일기를 시작한 계기가 된 엄청난 공포 상태에서 한 번도 부르지 않은 이름이 엄마였다고 고백한다.
<몸의 일기>는 십대부터 80이 넘는 나이까지 남자의 몸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진짜로 몸에 대한 일기인데도 글 속에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 일기란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고 게다가 몸에 대한 것만 쓰겠다고 다짐하고 쓴 일기가 이처럼 다양한 재미를 줄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내가 십대에 또는 이십대에 이 책을 읽었다면 남자에 대해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었을 것 같기도 하다. 살다 보면 이성에 대해 궁금해하는 때가 오는데 내가 십대 이십대를 지나오던 시기에는 남자든 여자든 서로에 대해, 그들의 몸과 마음에 대해 알 수 있도록 도움이 되는 것들이 너무 없었던 것 같다. 지금 그 나이를 지나고 있는 여성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남자의 몸과 정신에 대해서 이토록 재미있고 현실감 있게, 그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이야기해 주는 책이 또 있을까 싶다. 더 나아가 누군가가 솔직하게 여자의 <몸의 일기>를 다뤄준다면 이성이 궁금한 남성들이 여성을 잘 이해하게 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주인공은 80세 넘게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쇠락해 가는 노년의 몸에 관해서도 이야기한다. 남은 생이 얼마일지 모르지만 건강하게 살다가 일생을 마치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인 것을 알게 된 지금이라서 <몸의 일기>가 내 관심을 끌었는지도 모른다.
책을 덮으며 암 수술받고 오랜 시간 동안 치료받아 가며 서서히 회복 중이던 친구가 한 말이 귓가에 맴돈다.
“우리는 항상 우리 몸이 하는 이야기를 잘 들어야 해!”
한주란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하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