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젊은이와 늙은이 사이의 중년 어디쯤 있는 나는, 애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혼란한 시기의 사춘기 아이들처럼 몸과 마음의 엇박자를 일으키며 살고 있는 듯하다.
괜찮겠지, 하며 방심하고 맨다리로 치마를 펄럭이며 외출한 날이 있었다. 결국 꽃샘추위에 한 방 얻어맞고 일주일을 각종 감기약에 의존하면서 날씨 앞에 건방 떨었던 영양가 없는 패기에 쓴웃음을 지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손에 잡히는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자고 일어난 다음 날 이전에 아팠던 팔꿈치가 쑤셔오는 걸 느꼈었다. 그리고 며칠 동안의 습한 날씨 탓에 무릎까지 보태져서 결국 전기장판을 고온에 맞추고 어른들에게 흔히 듣던 ‘살 지지기’를 했었다. 덕분에 늘어가는 살 걱정을 뒤로하고 요가센터는 일주일 동안 한 번도 못 나갔다.
이쯤 되면 늘 잊고 있었던 영양제를 다시 챙겨 먹기 시작한다. 그리고 내년 겨울엔 꼭 내복을 사야겠다는 생각과 엄마에게 사드렸던 영양제를 검색하며 이제 나에게도 필요하다는 인식을 애써 주입한다.
얼마 전 배달 받은 김애란 소설집을 이틀 만에 다 읽었다. 휴식을 강요당한 몸 덕분에 집에 있다 보니 책에 집중할 수 있어서 그건 좋았던 것 같다.
여러 개의 이야기 중 제일 처음 이야기를 읽는 동안에는 얼마나 많이 울었던지 코 풀은 휴지가 산처럼 쌓이고 있었다. 오늘은 읽다가 빵 터진 부분이 있었는데, 40대 딸이 늙어가는 몸뚱이에 약을 쏟아붓는 엄마 앞에서 “엄마 나 지금 몇 살이지? “물으니까 무심하게 돌아오는 엄마의 한마디 “네 나이는 네가 좀 세라” 이 부분이었다. 왜 이 대답이 웃긴 건지 순간 깔깔하고 웃음이 나왔는데 너무 공감돼서 그랬던 것 같다. 나도 엄마와 이런 대화를 했던 적이 있었으니까.
왜 나이 든 사람들은 자기 나이를 까먹지? 하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정말 세월은 나이의 속도만큼 흘러가는지도 모르겠다. 나이를 세는 속도를 세월이 추월하기 바빠서 인지를 못하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나처럼 익숙한 젊은이의 몸에서 어색한 나이 듦의 몸을 왔다 갔다 하다 보니 헷갈려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몸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지금 나의 감성을 있는 그대로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오지 않을 중년의 내 모습인 동시에 나의 한 부분이고 내일이면 없어질 오늘이니까 더욱 소중하게 버리면 안 될 것 같다. 사춘기는 방황하느라 시간을 낭비했다면 갱년기의 시간들은 꼭꼭 눌러 담을 것이다. 훗날 노년이 되었을 때 인생의 그릇 앞에 지나온 삶을 하나씩 꺼내 먹으면 노후의 삶이 그리 배고프진 않을 것 같다. 우리들의 중년이 아름다운 씨앗이 되어 노년에는 귀하고 성숙한 열매들을 많이 거두게 되기를 소망한다.
은명주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하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