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을 처음 읽을 때는 빨려 들어가는 듯한 몰입감에 단숨에 읽어냈고, 두 번째 읽을 때에는 ‘살인’에 초점이 맞춰졌다. 거듭하여 읽을수록 남는 잔상, 그것은 ‘욕망’이다.
주인공인 ‘장 바티스트 그루누이’는 18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 속에서 시장의 한 가난한 생선장수의 아기로 탄생한다. 찢어질 듯한 산통을 이겨내고 나온 아기지만 생선을 자르던 칼로 대충 탯줄을 잘라내어 어패류 내장 더미에 버려졌다. 축복받지 못한 탄생, 그것이 그루누이 인생의 시작이었다.
그루누이는 고아원을 전전하며 자라났다. 남들과 잘 융화되지 못하던 아이는 언제나 혼자였다. 향기를 맡는 능력이 남들보다 탁월했기에 혼자 들풀의 냄새, 흙냄새, 물 냄새 등을 맡으며 성장한다. 고아원에서 나온 그가 막노동을 하며 살아가던 어느 날, 보드랍고 반짝이는 살결을 가진, 자두를 파는 소녀와 마주친다. 일순간 소녀의 체취에 매료되고, 난생처음 황홀감을 느낀 그루누이는 소녀를 따라가지만, 소녀는 인기척을 뒤늦게 깨닫고 흠칫 놀란다. 역시나 놀란 그루누이는 충동적으로 소녀를 죽이게 되고, 사망한 소녀의 몸에서 체취를 주워 담고 싶어졌다.
‘향기’에 집중하게 된 그루누이는 조향사들을 찾아가 ‘향기를 가두는 법’에 몰두한다. 그가 바라는 것은 꽃향기도, 나무 향기도 아닌 ‘사람의 향기’이다. 그루누이가 살인하게 되는 동기는 단순히 ‘향기를 가두기 위함’이다. 사람의 향기가 그 어떤 향료보다도 아름답다는 것을 느낀 그루누이는 탐스러운 젊은 여인의 향기를 모은다. 목표한 만큼 ‘아름다운 사람의 향‘수집에 성공한 그루누이는 세상에서 가장 매혹적인 체취 향수를 만드는 데 성공한다.
그루누이는 평생의 걸작인 체취 향수를 만인 앞에서 선보인다. 향기를 뒤집어쓴, 이제서야 반짝거리게 된 그루누이를 모두가 선망한다. 가지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 찬 만인의 눈빛은 야수의 것과 다를 바가 없으며, 그들의 욕망에 갈기갈기 찢겨 그루누이와 그 산물은 세상에서 사라지게 된다.
무엇이 그를 살인으로 이끌었을까? 무엇이 그를 향기에 집착하게 했을까? 그것은 사랑을 받고자 하는 욕망이다. 태생부터 성장 과정까지 따뜻한 사랑을 한 움큼도 받아보지 못한 그루누이는 누구 하나 인생의 지침 한 자락 내려주는 이 없이 척박한 삶을 스스로 개척해야만 했다. 남들과 같았더라면 사랑을 받았을까?’, ‘사랑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와 같은 물음들 뒤에는 가장 매력적인 향기로 스스로를 감싸면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는 이유를 코로나바이러스가 무성히도 뻗치던 시기에 체감했다. 남들의 시선이나 관심에 무던하다고 느껴왔던 나 자신에게 사회에서 단절된 삶이 주는 무료함은 실로 적지 않았다. 나의 성과를 가장 두드러지게 보아주는 가족이 있었기에 경감되었지만, 가족이 채워줄 수 없는 타인의 관심에 해당하는 부분에서 큰 공허함이 밀려왔다. 타인의 시선, 관심과 같은 것을 애정 또는 사랑이라고 통칭할 때, 이것으로 유기적으로 얽혀 있는 사회적 관계에서 벗어나기 힘든 인간의 특성 때문에 ‘사회적 동물’이라 부르는 것임을 느꼈다. 인간은 이것을 받기 위해 몸부림치기도 하는 것이다.
그루누이는 애정의 결핍이 외부적 요소에서 기인한다고 판단했다. ‘향기의 부재’. 그것이 스스로가 사랑받지 못하는 이유라고 생각한 것이다. 사랑받고 싶은 욕망, 향기로 스스로를 감싸고 싶은 욕망에 휩싸여 살인을 감행했다.
우리는 누구나 욕망과 이성의 줄다리기를 경험한다. 사회적 동물이기에 갖게 되는 욕망을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에 이성으로 억눌러야 하는 역설 속에 있다. 사랑받고 싶은 욕망으로 누군가를 시기하고 질투하지는 않았는지, 나의 분노가 욕망에서 기인한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봐야겠다.
장다정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하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