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을 의식하여 숨을 눌러가며 한 줄 한 줄 읽었다. 나중에는 그 의식이 없어져 소설 후반부의 작은 새를 만나고서야 박동이 느껴졌다. 내 앞에서 어둠 속으로 날아가 버릴 것 같아, 내 파동을 만들고 싶지 않았고 마지막 장을 덮은 후 한참 동안 가슴이 저며오는 떨림에 잠겨 있었다.
단번에 읽히지 않고, 한강의 시집에서처럼 영혼의 무게가 고통으로 느껴지는 연장선에 이 편지 같은 독백을, 소설로 마주했다. 처음과 끝, 주인공마다 시점이 바뀌는 이야기는 돌아가 다시 읽게 되고, 작가의 시선이 마치 그에게는 또 하나의 언어가 되는 듯한 묘함에 다다랐다.
두 주인공이 있다. 그녀와 그. 그녀는 말소리를 잃었고, 그는 빛(눈)을 잃어가고 있다. 그녀는 침묵의 소리에 익숙하고, 그는 어둠속의 빛을 익히고 있다. 그리고 둘을 교차하는 희랍어 수업이 있다.
희랍. 希腊. 헬라. 그리스.
헬라어(헬라스어)는 신약 성경이 쓰여진 언어여서 관심있는 경우라면 낯설지 않다. 소설의 두 인물에게는 더이상 사용되지 않아 변화와 균열이 없는 이 고대의 언어가 두려운 세계로부터 보호된 ‘완결된 공간’이고, 삶을 회복하려는 배경이 된다.
그녀에게는 17살에 갑자기 찾아온 첫 실어증을 ‘우연히’ 깨트려버린 한 외국어 단어가 있다. 비블리오떼끄. (도서관, 불어) 20년이 지나 가정이 깨어지고 법적으로 아이를 잃고 다시 찾아온 그것으로부터, 지금은 자신의 노력으로 벗어나고자 한다. 일말의 관계없는 희랍어를 최후의 수단으로 선택한 것.
그에게 가족과 떠난 독일에서의 어린 시절은 어둡고 불안한 것이다. 떠났던 아버지가 갑자기 빛을 잃은 눈이 되어 나타나고, 그것이 본인에게도 유전이 된다고 알게 되며 빠져든 관념적 세계가 희랍어와 철학이다. 지금은 모국으로 돌아와 고대어 희랍어를 가르치는 이유다.
이따금 그녀는 자신이 사람이기보다 어떤 물질이라고, 움직이는 고체이거나 액체라고 느낀다. 따뜻한 밥을 먹을 때 그녀는 자신이 밥이라고 느낀다.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할 때 그녀는 자신이 물이라고 느낀다. 동시에 자신이 결코 밥도 물도 아니라고, 그 어떤 존재와도 끝끝내 섞이지 않을 가혹하고 단단한 물질이라고 느낀다. 침묵의 얼음 속에서 그녀가 온 힘을 다해 건져내 들여다보는 것은 이주에 하룻밤 함께 지내는 것이 허락된 아이의 얼굴과, 연필을 쥐고 꾹꾹 눌러쓰는 죽은 희랍 단어들뿐이다. (59p)
눈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침묵이라면, 비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끝없이 긴 문장들인지도 모른다. (174p)
소리 없이 떨어지고 사라지는 그녀의 침묵이 눈과 같고, 쏟아지는 빗방울은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는 그와 같다. 비, 우산, 파르스름한 정맥, 새파란 실타래, 등 서늘한 시각을 떠올리는 그는 그녀를 더 알지 못해도 어딘가 닮아 있다. 나의 무언가를 찌르는 것. 그. 그녀.
심장과 심장이 맞대고 서로의 상이 맺힌 눈을 볼 정도로 가까워진다. 그 순간 서로의 아픔이 이제는 예전의 파편들이 아니다. 그 파편들을 뚫고 나와 그는 자신 앞에서 서술되어지는 그녀로부터 빛을 본 것일까. 그녀는 소멸하는 언어로부터 벽을 헐어 소리를 찾아낸 것일까…
고통과 고독을 감싸 안고 빛나고 부드러운 실크를 만드는 누에, 누에고치가 한강 작가 같다는 생각을 한다. 소설 언어의 결이 너무 섬세하고 서늘하고 아름답다. 소멸하는 것으로부터 생명은 태어난다. 나는 무엇을 잃어가고 있고, 그럼에도 살아있음을 기뻐하는가 감사하는가… 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다.
하경옥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하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