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박물관에서 韩中 교류 흔적 찾기
박물관을 탐방하고 감상하는 법은 어디서, 누구로부터 배울 수 있을까? 중국에 거주하는 우리는 얼마나 중국의 역사와 유산을 이해하는 동시에, 그 안에서 한중 교류의 흔적을 찾아 진정한 소통을 하고 있을까?
박물관 리터러시(literacy)는 이러한 과정에서의 필수적인 관람 태도를 강조하는 개념이다. 이는 단순히 정보를 습득하는 능력을 넘어, 전시된 유물과의 대화를 통해 역사적 이해를 심화하고, 다양한 관점에서 유물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중국 박물관에서 한중 교류의 흔적을 찾는 것은 우리가 한국인으로서 어떠한 역사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 자각하게 하며, 동시에 중국 역사문화와의 상호작용을 깊이 이해하는 데 큰 통찰을 제공한다. 본 칼럼에서는 화동 지역의 박물관과 전시를 돌아보며 박물관 문해력을 키워 그 방향성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9 상하이시역사박물관: 국제 도시의 시작을 탐색하다
상하이에서 살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장 붐비는 곳으로 인민광장역을 떠올릴 것이다. 이곳은 상하이의 교통 중심지이자 많은 여행객들이 필수적으로 방문하는 공간이다. 세계 무역의 허브로 자리 잡은 이 도시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알고 싶다면, 반드시 방문해야 할 곳이 있다. 바로 상하이 역사 박물관이다.
[사진=박물관 전경]
박물관에서 주로 고대와 중세 유물에 익숙했던 나는 오히려 근대 전시가 특히 눈에 띄었다. 박물관의 3, 4층을 차지한 근대관을 둘러보면서, 그동안 상하이의 변화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던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전시의 시작은 강렬하다, 아편전쟁을 상징하는 거대한 대포 앞에 서자 다시 걸음을 옮기기 어려웠다.
[사진=1984년 오송서포대 유적에서 출토된 청동포]
아편전쟁 당시 영국을 상대로 사용되었던 이 대포는, 찬란했던 중국 문명이 무너지는 순간을 상징하는 듯했다. 강대국의 함포사격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패배한 청나라 군대, 그 무력감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제국주의가 남긴 상처를 공유하고 있는 한국인으로서, 이 장면은 유독 뼈아프게 다가온다. 하지만 패배의 역사를 마주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이 어떻게 오늘날의 상하이를 만들었는지를 이해하는 일일 것이다.
국중지국(國中之國), 3개의 구역으로 쪼개진 상하이
박물관의 전시실을 따라가다 보면, 상하이가 단순한 항구 도시가 아닌, 나라 속의 나라, ‘국중지국’이었음을 실감할 수 있다. 1840년, 영국은 중국 시장을 개방하기 위해 아편 문제를 빌미로 침략 전쟁을 계획하였고, 청나라 정부가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1842년 난징조약이 체결되었다. 상하이는 중국 내 다섯 개의 강제 개항 항구 중 하나였다. 이후 서구 열강들은 상하이에 조계를 설정하고, 무역·선교·교육 활동을 확장하면서 식민 통치를 강화해 나갔다.
[사진=난징조약의 영문 번역본]
1845년부터 영국, 미국, 프랑스가 차례로 상하이에 조계를 설립하였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조계의 규모도 점차 확장되었다. 그 결과 공공 조계(영미 합작), 프랑스 조계, 그리고 화계(중국인 거주 지역)로 나뉘어, 지금의 와이탄과 쑤저우허를 기준으로 북쪽은 공공 조계, 남쪽은 프랑스 조계, 그 아래로 원형의 소규모 화계로 나뉘었다. 서구 열강들은 조계 내에서 독자적인 행정 및 법률 체계를 운영하며 치외법권을 행사하며, 한 도시에 세 개의 행정 체계라는 독특한 도시 구조를 만들어냈다.
[사진=미국 조계지를 알리는 표지]
전시관 한편에는 당시 조계별 행정 문서와 경계를 나타내는 표지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 표지석 앞에 서 있자니, 한때 같은 도시 안에서 각기 다른 법과 규칙이 적용되던 상하이의 혼란스러운 시대상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과거 이곳을 거닐던 시민들은 자신의 거주지가 누구의 통치 아래에 놓여 있는지 늘 신경 써야 했을 것이다.
국제 금융 허브의 시작: 다양한 국가의 화폐와 금융 시스템
한편, 이 시기 상하이는 단순한 무역항에서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금융 중심지로의 성장을 겪었다. 1847년 상하이에 첫 외국계 은행이 설립된 이후, HSBC, 프랑스 법란시은행 등 다수의 외국계 은행이 차례로 진출했다. 19세기 말 외국 은행들은 상하이의 국제 결제 업무를 독점하며 강력한 금융 네트워크를 구축했고, 20세기 초에는 9개국(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일본, 미국, 벨기에, 네덜란드, 이탈리아)의 68개 은행이 운영될 정도로 금융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배경 덕분에 1897년 중국은 상하이에 첫 자국 은행을 열 수 있었다.
[사진=중국통상은행 발행 화폐]
박물관 내 전시관에서는 이러한 금융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보여주는 다양한 국가의 화폐가 전시되어 있다. 유리 진열장 속에는 당시 상하이에서 통용되었던 영국 파운드(GBP), 프랑스 프랑(FRF), 미국 달러(USD), 일본 엔(JPY), 독일 라이히스마르크(RM), 러시아 루블(RUB) 등 다양한 국가의 화폐들이 나란히 놓여 있다. 유리 케이스 너머로 오래된 지폐와 동전을 바라보니, 저 지폐가 수쳤을 각국 무역상들의 설렘이 겹쳐 보였다.
페라나칸과 화상의 국제 무역망: 개항이 가져온 기회
전시장 한편에 놓인 도자기는 근대 시기 화상의 무역과 이주 역사를 담고 있다. 대형 합에 뚜껑이 달린 형태의 이 도자는 동남아시아 화교 사회에서 자주 사용되는 기형으로, 페라나칸(Peranakan) 도자로 불린다. 싱가포르의 페라나칸 문화 박물관에서도 동일한 도자기를 본 기억이 떠올라 순간 화상(華商)들의 발자취가 지도 위에 그려지는 듯 했다.

[사진=싱가포르 페라나칸문화박물관 소장 도자기]
페라나칸은 19세기 중반 이후 광동 및 푸젠의 중국 남부 출신 화교들이 말레이반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지로 이주하면서 지역 문화와 융합하여 형성한 독특한 문화다. 상하이 개항은 이러한 화교 네트워크를 더욱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상하이는 화교 상인들이 본토와 동남아 시장을 연결하는 핵심 거점이 되었다. 특히 도자기, 차, 비단과 같은 중국 제품이 페라나칸 사회에 유입되었으며, 반대로 동남아 향신료와 원자재가 상하이를 거쳐 중국 본토로 유입되었다.
[사진=상하이시역사박물관 소장 도자기]
근대 산업과 소비 문화의 탄생
박물관 전시실을 걸어가며 상하이가 산업과 소비의 중심지로 변화한 과정 역시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서구 열강들이 조계에서 식민 통치를 확립하는 동시에, 서구식 생산 방식, 기술, 관리, 도시 운영 및 생활 방식 등이 중국으로 빠르게 전파되었다. 이 시기 상하이에서는 방직, 맥주, 전기, 석유 등의 다양한 산업이 발전했다. 120년도 더 전에 생산된 근대 맥주병의 실물을 눈으로 보고도 믿겨지지 않았다.
[사진=1909년 설립된 독일 맥주공장 유니온 비어(UB) 맥주병]
이후 인구의 증가, 경제의 발달과 함께 백화점과 같은 소비 문화도 급격히 성장했다. 1910~20년대에 걸쳐 ‘영안(永安) 백화점’, ‘신신(新新) 백화점’ 등 서구식 대형 백화점들이 난징루(南京路)를 중심으로 들어섰으며, 이는 중국 내에서 근대적 소비문화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전시된 사진 속, 번화한 난징루 거리를 가득 메운 인파와 화려한 쇼윈도를 바라보며, 모던보이와 모던 걸의 근대 도시 상하이가 실감나기 시작했다.
[사진= ‘영안공사’가 새겨진 도자기]
박물관에는 ‘영안공사(永安公司)’ 글자가 새겨진 도자기가 전시되어 있다. 영안 백화점은 1916년 난징루와 저장루(浙江路) 교차로에 설립된 상하이 최초의 현대적 백화점으로, 근대적 소비문화의 전환점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공간이었다. 백화점의 이름을 새긴 자기라니, 지금의 명품처럼 사람들 사이에서 소비문화의 상징적인 사치품으로 전폭적인 인기를 끌었을 것이다. 영안 백화점 본사 건물은 19층으로 당시 난징동루에서 국제 호텔(国际饭店)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건물로, 지금도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박물관을 나서며
전시 관람 후 올라선 박물관 옥상 정원에서는 황푸강변의 상하이 시내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구 열강이 나누어 가진 조계지의 흔적, 금융 중심지로 변모한 도시의 마천루, 그리고 세계 각지로 퍼져 나간 화상들의 발자취가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사진=옥상정원 전경]
특히 이 박물관 건물은 1862년 설립된 상하이 경마구락부(Shanghai Race Club, 上海跑马总会) 본부였으며, 당대 외국인 사회의 사교 중심지였다. 경마장은 상류층과 금융업 종사자들이 모여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공간으로 연회, 무도회, 사교 행사가 열리는 상하이 경제 번영의 상징이었다. 상하이의 근대 발자취에 관심이 있다면 직접 방문해 이 도시의 격변과 역동적인 성장과정을 몸소 느껴 보길 권한다.
•주소: 黄浦区南京西路325号•시간: 화-일 9:00-17:00(입장 마감 16:00), 월 휴무•입장료: 무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