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책 벼룩시장 송년 모임, 모인 멤버들은 모두 각자의 소중한 책을 들고 추천사와 함께 나눔과 기증을 해 주었고, 그 중 제목에서부터 오는 끌림으로 <간서치전(책만 보는 바보)>을 선택하여 소장하게 되었다. 어쩌면 나 자신도 외적으론 성숙한 겸손함, 내면은 지식과 교양으로 채워진 간서치가 되고 싶었나 보다.
<간서치전>은 조선 후기 학자 이덕무의 자서전이다. 그는 일생 2만 권 이상의 책을 보았고, 손수 베낀 책만 해도 수백 권에 달한다고 하니, 과연 ‘책에 미친’, ‘책만 보는’ 이란 수식어에 걸맞은 인물이다. 나의 최애 조선왕 정조와 함께한 학자라니 내심 부럽기도 했다.
이덕무는 서자 출신 실학자로 출신 신분의 한계로 정계에 나가지도 못하고, 농사나 장사를 하여 먹고 살 방도를 찾을 수도 없어 생계를 근근이 이어가는 반쪽짜리 양반이었다. 등불조차 아끼며 해가 있는 날은 들어오는 빛을 따라 책상을 옮겨가며 책을 읽는 이덕무, 늘 풍요로운 물질 속에서 절실함도 허기짐도 느껴보지 못하고 살아온 이에게 이덕무와 같은 간서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어리석은 이의 사치스런 바람인 것일까.
문틈 사이로 차디찬 한기가 들어올 때, 그는 <논어>를 세워 바람에 흔들리는 등촉을 지켜내고, <한서>로 홑겹의 이불 위를 덮어 추위를 견뎌내며, 가난하고 허기진 자신의 처지를 책들과 함께하며 소소한 행복을 찾아내 몸과 함께 웅크려지는 마음을 다독이며 살아갔다.
극심한 흉년으로 온 식구가 굶주리자 애장하는 <맹자>를 팔아 양식을 얻었고, 이 소식에 벗 유득공은 선뜻 자신이 아끼는 <좌씨 춘추>를 팔아 술을 사서 벗의 헛헛한 마음을 위로했다. 이러한 그의 주변에는 나이 차를 벗어나 이덕우만큼이나 학식 있는 서자 출신들, 역시나 생계를 걱정하며 살아가는 실학자들이 함께했다. 동네 절 안 백탑 아래는 이 같은 이덕무의 벗들(박제가, 유득공, 백동수, 이서구)이 모여 애환을 나누는 아지트가 되었다.
“탑은 제 그림자를 다리처럼 길게 놓아 벗들에게로 가는 길을 만들어 주었다. 또한 내가 오래도록 머무를 자리도 만들어 주었다. 나도 백탑처럼 세상에 우뚝 서 있는 기분이 든다.”
벗들과 더불어 담헌 홍대용과 연암 박지원 같은 스승들도 함께하였으니, 시대적 편견에 머무르지 않고 신분과 나이를 떠나 학식과 됨됨이를 알아보는 이 같은 스승들의 추천으로 정조의 개혁적인 인재 등용 시 힘든 삶을 견디며 버텨온 이들에게 기회가 되었고, 규장각 등 조정에 들어가 자신들의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물론 정조 말기 당파에 밀려 정조의 개혁 정책이 빛을 잃게 되고 이들은 다시 일에서 배제되었다.)
사신으로 중국을 방문하게 된 이들이 글로써 중국의 선비들과 생각을 나누며 우정의 싹을 틔우는 모습에, 말로서의 소통은 많아졌지만, 깊이 없이 난무하는 말들 속에서 느껴지는 가슴 속 공허함은 어쩌면 글에서 오는 깊이를 채우지 못한 데서 오는 것이 아닌가 싶다.
대물림되는 신분의 벽으로 인한 서자들의 분노와 서러움을 책에서 얻는 지식의 기쁨과 벗과 함께하여 얻는 위안, 스승과 함께하여 깨닫게 되는 지혜로 버티며 이겨내는 간서치의 모습. 역사를 알아가고 그들의 글을 읽어 지혜를 얻고 다시금 깨어 있게 되는 오늘, 이렇게 책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참 좋다.
김길순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하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