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이야기

매화와 유채꽃이 피고, 벚꽃이 하늘을 가득 채우는 상하이의 봄은 마음을 설레게 한다. 긴 겨울을 지나 마주한 햇살은 유난히 따스하고, 바람은 부드럽다. 계절이 바뀌는 것만으로도 마음 속이 봄빛으로 채워지고, 작은 기쁨이 살며시 다가온다. 나는 사계절 가운데 봄을 가장 사랑한다. 어쩌면 봄은 마음을 새롭게 열고, 다시 시작할 힘을 조용히 건네는 계절일지도...
“꽃은 벌의 소리를 듣는가?”(Does the flower hear the bee?)라는 시적인 타이틀은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나 전시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겨우 발걸음을 하게 되었다. ‘꽃이 벌 날개짓의 진동을 듣는다’는 최근의 과학적 발견이 아니더라도 꽃이 벌의 소리를 듣고, 햇빛의 따스함을 감지할 것이라는 추측은 삶의 경험치가 제법 쌓인 나에게는 이미 확신에 가깝다. 제15회 상하이...
새벽까지 잠을 못 잤다. 신나서. 너무 신나서 노트북 자판 위에서 손가락이 날아다녔다. 문서에 마침표를 찍고 잔뜩 집중했던 미간을 풀었다. 며칠을 붙들고 있었는데도 지치지 않았다. 대체 얼마큼의 체력을 끌어다 쏟아 부은 것일까. 아마 20년 전 열정까지 소환됐던 것 같다. 얼마 못 가 이 일은 엎어졌다. 협의 과정에서 이견이 있어 더...
올해 춘절 기간 이동 인구가 연인원 90억명 이상이 예상된다는 중국을 피해서 2월초 일찌감치 서울로 들어왔다.  그동안에도 애가 방학이 될 때마다 서울을 드나들었으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이지만, 3년여 동안의 코로나가 기억의 깊은 공백을 만든 것인지 아니면 나이가 들어 기억의 유효기간이 짧아진 것인지, 오랜만에 서울에서 가족들과 명절을 함께 하는 느낌이었다. 특히나...
[사진= M50 골목길] 얼마 전 ‘모간산루 M50(莫干山路 50号)’를 방문했다. 마지막으로 이곳을 찾은 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아득하다. 코로나의 어두운 터널이 시작되기 전에 와보고는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세월은 흐르지 않는 곳이 없다. M50의 탄생, 성장과 전성기, 오늘에 이르기 까지 그곳의 여정은 나의 상하이 생활과 묘하게 흐름을 같이 하고 있는 듯하다. M50는 1990년대...
오늘 뭐 먹지?  끝없는 인생 난제다. 매일 해야 하는 고민이고 심지어 식욕 없는 날에도 가족들 생각하면 해야 하는 고민이다. 그날도 그랬다. 고민을 털어버리려고 냉장고를 뒤적이는데 지인이 반찬을 나눠 먹자며 연락해왔다. 청량한 바람 냄새와 함께 온 그녀는 참기름 둘러 반짝이는 나물들과 온기 남은 메추리알 조림을 꺼냈다. 나는 메추리알만 보면 떠오르는...
공항에서 딸과 헤어지며 돌아서는 남편의 얼굴에는 쉽게 숨길 수 없는 슬픔이 어려 있다. 조금 전까지 꿀이 떨어질 듯 바라보던 눈빛에는 아쉬움이 가득하고, 딸과 이야기할 때만 나오던 다정한 목소리도 깊게 가라앉는다. 그 순간 나는 남편의 시선에서 ‘아버지’라는 이름의 온기를 본다. 내가 어릴 때, 아버지는 좀처럼 울지 않는 사람이었다. 말수가 적었고...
이맘때 J형 인간들은 난리가 난다. 파워 J인 나부터도 그렇다. 새해 새 계획을 세우는 과정은 매우 흥미롭고 하나씩 실천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도파민이 출렁인다. 매년 주제를 정하고 네다섯 가지의 계획을 달력 제일 앞장에 써두는데 2025년 달력 1월에는 굵은 고딕체로 이렇게 쓰여 있다. ‘상하이에 있는 지금, 시작할 것’. 2026년 1월 1일에 곱씹어보니...
그동안 음력의 절기节气가 뭔지 전혀 개의치 않고 살다가, 이번 겨울 정신이 번쩍 들게 추웠던 지난 주, 특히나 상하이에서 참으로 보기 드물게 눈발이 휘날렸던 그날이 대한大寒이었다는 걸 알고 바로 날씨를 납득했다.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 따위는 상상하기도 힘든 그런 상하이에서 눈발까지 날리며 영하로 내려 간 드문 날이었지만 대한이라니까 그럴 수도 있겠구나...
사랑하는 사람들과 잔을 기울이며 한 해를 정리한다. “지난 한 해 수고 많으셨어요. 새해에도 건강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행복을 나눠요.” 엄마와 아빠, 우리 부부, 그리고 딸. 다섯 식구뿐인 가족이지만 해마다 연말이면 빠짐없이 송년회를 연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 가족만의 작은 의식이다. 상하이에서 20년을 그렇게 보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부모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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