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2025년 현재 시점, 나는 상하이 생활 23년 차에 접어든 ‘신상하이인’이다. 올해 딸애는 25fall로 드림스쿨 꿈을 이루어 미국으로 유학을 갔고, 그 동안 손녀 딸 애지중지 키워주셨던 부모님도 고향에 들어가시는 바람에 상하이엔 나랑 남편 둘만 달랑 남았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주방과 거실에서 분주하게 돌아치던 부모님의 그림자도, ‘엄마’를 부르는 딸애의 응석어린...
국경절 연휴를 보내고 상하이로 돌아왔다. 출근길에 언제나처럼 홍췐루 완상청 앞을 지나는데, 블루보틀 공사 가림막이 눈에 띈다. “어, 블루보틀이 들어오나 보네.” 홍췐루 완상청의 매장들은 진득한 맛이 없다. 장사가 조금만 안 돼도 금세 문을 닫고, 성격도 급하다. 새로운 매장이 생겼다고 반가워할 일도 아니다. 한 번 가보기도 전에 간판이 바뀌는 경우가 많다.그래도...
중국 돈 6만 위안을 빌려줬다. 4년 전에. 그녀를 알고 지낸 지 3년쯤 됐을 때였다. 자신의 가게를 운영하는 친구였고 너무 열심히 즐겁게 일하는 친구여서 항상 응원하고 금전적으로도 필요하면 여러가지 방법으로 도움을 주곤 했다. 한번은 한국 돈 500만원 정도를 한 달 정도 빌려달라고 했으나 왠지 진짜 돈으로 얽히면 순수한 우정이 망가질까...
추석 밤하늘에 휘영청 달이 떴다. 올해는 유난히 유리알처럼 반짝인다. 둥근달 안에 그리운 얼굴이 하나씩 스쳐간다. 세상을 떠난 이들도, 남아있는 이들도 모두 그리움의 대상이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 그리고 세상에 하나뿐인 남동생. 안부를 건네는 것도 낯간지러워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여기며 살아가는 녀석이 어느 날 전화를 했다. 퇴근길에 들린 음식점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홍성범의 차이나 이노베이션 현지중계석] ‘주왕’을 이기는 ‘한왕’, 그 ‘한왕’을 키워 낸 중국과학원 ‘주왕’과 ‘한왕’, 초한전 내용이나 삼국지 스토리가 아니다. 중국 주식시장 이야기다. 중국 주식시장에는 3대 왕이 존재한다. 오랫동안 확고하게 왕의 자리를 지켜온 주(酒)왕 <귀주마오타이>(贵州茅台), 전 세계 배터리 시장을 호령하는 닝(宁)왕 <닝더스다이>(宁德时代/CATL), 그리고 올해 새롭게 등극한 한(寒)왕 <한우지(寒武纪)>가 그 주인공이다....
고 이건희 회장은 천재 한 명이 만 명을 먹여 살린다고 했다. 그 말은 바르셀로나에서는 틀렸다. 죽은 가우디 혼자 바르셀로나 시민을 먹여 살린다. 인구 170만 명 조금 넘는 면적 100 k㎡(서울 용산구와 마포구를 합친 면적과 비슷) 바르셀로나에 방문하는 관광객이 1,600만 명이 넘는다. 오로지 성심당 빵을 사기 위해 대전에 가듯, 가우디가...
올리버 색스(Oliver Sacks, 1933년 7월 9일~2015년 8월 30일)는 저명한 신경의학자이자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와 같은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에 쓴 <나의 주기율표(My Periodic Table)>라는 글은 화학에 도무지 흥미가 없었던 나에게조차 깊은 감동을 주었다. 누군가에게는 화학이 세상을 이해하는 창구가 된다는 것이 신기했다.  81세 생일에 81번...
잠실 파크리오, 방사형 구조와 대치동, 병원과의 접근성 덕에 지금도 높은 집값을 자랑한다. 그러나 그곳은 과거 낡은 시영아파트 대단지였고, 나는 그 11평 남짓한 집에서 자랐다. 비좁지만 세 식구에게는 알맞은 둥지였다.  하지만 송파라는 지역은 내게 흔들림의 연속이었다. 부모가 교수이거나 의사인 친구들,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뭐야?” 라는 물음에 “호주 갈 때 먹는...
아이들이 모두 떠났다. 셋째까지 올해 대학에 입학하면서 이제 집엔 나 홀로 남았다. 여기서 집이란 상하이 집을 말하는 거다. 둘째가 태어난 2004년에 이사 와서 21년을 꼬박 살았다. 둘째와 셋째는 이 집에서 태어나 고 3때까지 살았으니 평생을 여기서 산 셈이다. 상하이 집은 그들에게 탄생지인 동시에 고향인 셈이다.  집을 팔까 생각했지만 여러가지...
얼마 전 TV에서 방송인이 된 추성훈과 그의 일행이 중국 충칭에서 국수를 주문하는 장면을 보게 됐다. 중국어가 통하지 않자 손짓발짓, 바디랭귀지를 총동원해 간신히 주문을 마쳤다. 충칭은 지역 방언이 심해 번역 앱도 무용지물인 것 같았다. 처음 중국에 왔을 때의 내 모습도 딱 저랬을 것이다. 지금은 제법 자연스럽게 음식 주문 정도는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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